2016

NICE (News & Information for Chemical Engineers), No. 186

NICE (News & Information for Chemical Engineers), No. 186

영화 속의 도시, 도시 속의 건축 <영화 속의 선거>

임동우

오늘 다룰 영화는 한국에서는 <킹메이커>로 소개된 이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진 죠지 클루니가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미국 대통령 선거를 위한 유세 과정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불과 얼마 전에 총선이 끝난 한국과, 여전히 각 당의 대통령 후보자를 뽑기 위해서 레이스를 펼치고 있는 미국의 상황이 잘 맞아 떨어져, 이 영화가 주는 포인트는 다른 때보다도 더 남다르게 느껴진다. 우리가 늘 보아왔던 것처럼 (영화에서건, 현실에서건) 정치인의 이면에는 늘 추잡한 비밀이 감추어져 있고, 이 영화는 이것이 왜 사라지지 않고 반복될 수 밖에 없는가에 대해서 단편적으로나마 보여주고 있다. Ides는 로마력에서 각 달의 13일 혹은 15일을 의미하는데, 3월의 경우에는 15일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영화의 타이틀인 Ides of March는 날짜로는 3월 15일을 의미하는데, 이 날짜는 역사적으로는 율리우스 케사르가 암살당한 날로 유명하다. 영화의 배경은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경선 레이스인데, 3월은 ‘수퍼화요일’등 매우 중요한 주의 선거가 있는 달이다. 따라서 영화에서는 로마가 공화정에서 왕정으로 넘어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케사르의 죽음을 하나의 정치적인 싸인으로 사용된 것이다. 여기서 또 한번 우리나라에서 영화의 타이틀이나 포스터를 국내화시키면서 얼마나 무심하게 결정하는지 알게 된다. 한국의 정치판에서는 ‘킹메이커’라는 단어가 심심치 않게 사용되는 것 같지만, 이 영화가 초점을 맞추고자 하는 것은 ‘킹메이커’가 아니다. 여기서 잠깐 다른 얘기를 해보자고 하면, 국내에서 제작하는 해외 영화의 포스터는 그렇다치고 제목 마저도 너무 다른 이야기를 전달할 때가 많은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인지 요즘에는 영 입에 감기지도 않는 영어를 그대로 쓰기도 한다. 최근 개봉한 것으로 알고 있는 ‘런던해즈폴른’ 처럼 트레일러를 보고 겨우 이 제목이 ‘London Has Fallen’임을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 단지 필자의 얄팍한 영어실력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아예 뜻을 바꾸는 경우가 있는데, 예를 들어 ‘The Day After Tomorrow’는 한국에서 ‘투모로우’라는 타이틀로 개봉했다. ‘투모로우’가 아프리카의 한 소수 부족이 쓰는 주술적인 단어가 아니라 영어임을 알아차리는 것이 오래 걸리지 않더라도, 영화 내용을 보면 ‘내일 모레’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날짜개념인지 알것이고, 그것을 안다면 ‘더 데이 애프터 투모로우’가 너무 기니까 그냥 ‘투모로우’로 하자라고 결정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차라리 ‘킹메이커’가 더 애교있다고 봐야할런지도 모른다.

아무튼 다시 영화 내용으로 돌아가자면, ‘킹메이커’인 ‘스티븐’(라이언 고슬링 분)은 민주당 경선 후보인 ‘마이크 모리스’ (조지 클루니 분)의 선거 전략가팀의 2인자이다. 그의 보스격인 선거참모 ‘폴 자라’(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분)와는 다르게 정치인의 진심을 믿는 나름 순수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자기의 보스가 폴이 아니라 모리스라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듯, 자신은 모리스의 정치적 소신때문에 그의 선거 전략팀에서 일을 하는 것이지, 어떤 정치적 계산에 의해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고 자신한다. 때문에 자신은 정치가가 되고 싶기는 하지만 정치적인 사람은 되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스티븐이 ‘정치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 한 순간이다. 자신의 실수로 인하여 자신이 폴에 의해 전략팀에서 내쳐질 위기에 처하자 그는 ‘정치적’인 카드를 사용하여 그 스스로를 지킨다. 그리고 영화는 모리스처럼 되어버린 스티븐, 그리고 스티븐의 자리를 메꾸는 다른 한 사람, 또, 영화의 중요한 이야기 전개에 매개체 역할을 하던 인턴여성을 새롭게 대체하는 또 다른 인턴을 교묘하게 오버랩시키면서, 정치판이라고 하는 것이 사람들만 교체되는 것이지, 그 이면은 전혀 바뀌지 않는 곳이라는 메세지를 던지고 있다. 타임지 표지에 있는 조지 클루니의 얼굴과, 그것을 들고 있는 라이언 고슬링의 얼굴이 묘하게 중첩되게 표현한 영화의 포스터가 이해되는 순간이다.

사실 이 영화가 비밀스러운 음모와 계약들이 판치는 짜임새 있는 스토리의 정치영화도 아니고, 인물의 깊이가 깊은 영화도 아니어서 소재에 비해 연출이 다소 실망스러운 영화임은 틀림이 없다. 하지만 이 영화가 갖는 독특함이 있는데, 첫째는, 의외로 주변소리가 잘 안들린다는 점이다. 우리가 인지 못하는 경우가 잘 많은데, 연극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점 중에 하나가 주변소음이다. 연극은 주변소음이 있을리 없고, 대부분의 영화는 장면의 배경음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녹여내는가에 따라 몰입도가 달라진다. 그런데, 경우에 따라서는 주변소음을 최대한 죽여서 연극에서처럼 인물의 대사와 표정변화에 좀 더 집중하게끔 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러셀 크로우와 알 파치노 주연의 <인사이더>가 그러한 예인데, 필자도 처음에 이 영화를 볼 때,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고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다시 보니 주변소음이 의도적으로 차단이 되었던 것이다. <킹메이커>에서 역시 <인사이더>만큼은 아니지만, 의외로 주변소리를 많이 차단하는 연출을 하였다. 이는 영화의 두번째 특징과도 연결이 되는데, 이 영화가 미국 오하이오주의 신시내티를 배경으로 하고 찍었지만, 실제로 인물을 원경에서 잡는 씬이 많지는 않고, 대부분 폐쇄적인 공간, 즉, 호텔방, 강연장, 레스토랑 주방, 선거전략 사무소 등의 씬이 대부분이다. 이는 아마도 감독이 생각하는 현실 정치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야말로 밀실정치인 것이다. 아직 세련된 감독으로서의 역량은 부족한 듯 보이지만, 조지 클루니의 감독으로서의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기로에 있는 신시내티

영화의 몇몇 장면이나 대화에서도 나오지만, 영화의 배경이 되는 미국 오하이오주의 신시내티는 켄터키와 인디애나주, 그리고 오하이오주가 만나는 접점에 위치해 있는 도시이다. 실제로 영화에서 보여주는 강은 오하이오 강으로 켄터키주와 오하이오주를 나누는 강이다. 미국의 많은 미드웨스트 도시들이 그러하든 신시내티 역시 19세기 운하를 통한 물류의 증가로 발달하기 시작하여, 이후 20세기 철도의 건설로 물류와 제조업의 활황기를 맞다가, 미국의 중심이 동부 이스트 코스트와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하는 태평양 연안으로 양분되면서 퇴망의 길을 걷게된 도시이다. 아무래도 미국의 역사라고 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짧기 때문에, 많은 도시들이 산업에 연계되어 발달했다가도 금새 사그라 들기도 한다. 특히 신시내티나 인디애나폴리스, 세인트루이스 등의 도시들은 철도가 시카고로 연결되면서 하나 같이 쇠망의 길로 접어들게 된 도시들이다. 이전까지는 미국의 동서를 연결하는 주요 목이 되던 도시들이었는데, 더이상 그 물류의 주도권을 갖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신 덕분에 시카고는 뉴욕과 더불어 20세기 초반 미국을 상징하는 도시로 성장하게 된다. (사실 어느 순간에는 뉴욕보다도 시카고에 더 많은 자본과 문화가 집중되기도 하였다.)

아무튼 많은 미국의 미드웨스트 지역의 도시들이 산업이 몰락하면서 함께 몰락하곤 했는데, 가장 최근에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 예가 디트로이트다. 우리가 잘 알듯이, MoTown (Motor+Town)이라 불리우던 디트로이트는 자동차 산업의 메카였지만, 이 산업을 일본과 한국 등에 빼앗긴 이후에 거의 회생 불가능한 상태까지 몰락해버렸다. (실제 디트로이트에서는 단 돈 몇 불로도 건물하나를 살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미국의 도시 역사가 짧다보니, 도시를 지탱하고 있는 산업의 레이어가 단편적일 때가 많아서이다. 역사가 오래된 도시를 가보면, 그 도시가 현재 성장이 활발한 도시건 아니건 간에, 다양한 산업과, 교육 인프라, 적절한 소비시장, 적절한 교통 인프라 등을 갖추고 있다. 즉, 하나의 산업이 몰락한다고 해서 도시 전체가 몰락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필자가 거주하는 보스톤을 예로 든다고 하면, 보스톤 역시 예전에 영국의 물류 거점으로 성장하였지만, 필라델피아와 뉴욕에 밀려 그 산업이 쇠퇴하였다. 하지만, 이후 제조업과 인쇄 출판이 성장하였고, 그것이 쇠락한 이후에는 다시 관광과 금융이, 최근에는 바이오 테크놀로지 산업이 크게 성장하고 있으며, 이것의 이면에는 수 많은 교육 인프라가 뒷받침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디트로이트처럼 한 산업이 몰락해도 다른 산업 혹은 다른 분야가 뒷받침해 도시를 유지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신시내티 역시 다행히 다른 분야가 있었는데, 바로 학교이다. 많은 미국의 중소규모의 도시들이 ‘캠퍼스 타운’이라고 하여 대학을 중심으로 도시가 발달된 곳이 많다. 미국의 주립대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규모 이상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가능한 현상이다. 대학이 하나의 도시 산업이 되는 것이다. 신시내티 대학의 경우에도 전체 학생수가 5만명에 육박하니, 순수 학생 숫자로만도 강원도의 태백시 정도되는 것이다. 한국에서 가장 큰 대학이라 하여 늘 ‘2만 학우’라고 하던 서울대도 미국의 한 주립대의 절반도 안되는 것이다. 그러니 교직원들 포함 대학 관련 인구만해도 벌써 하나의 도시가 자립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제조업과 물류산업이 퇴락한 이후에도 도시가 디트로이트처럼 완전히 몰락하지는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산업을 유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미국 중서부 도시들의 현실이기도 하다.

디콘스트럭티비즘의 도시, 신시내티

새로운 산업을 유치하는 것이 힘들지만, 또 동시에 올드머니, 즉, 19세기, 20세기 초반 활황이었던 경제에 힘입어 축적한 부를 여전히 누리고 있는 ‘가문’들이 많이 존재하는 곳이 이러한 미드웨스트 (중서부) 도시들이다. (물론 신시내티는 동부시간대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지리적이나 도시특성상 중서부 도시로 묶는 편이 나을 것이다) 때문에 현재 도시가 성장하는 속도에 비해서, 혹은 현재 도시의 경제력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많은 문화시설과 소비시설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앞서 언급한 가문들에서 후원하고 기부하는 부분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익숙하지도 않은 중서부의 캔자스시티가 미국에서 가장 많은 부자가 있는 도시 중에 하나라고 하면 믿기는 힘들지만 사실이다. 다음에 다룰 미주리주의 세인트 루이스 역시 마찬가지이다. 올드머니를 지닌 가문들에서 지속적인 후원으로 상당히 많은 미술관과 박물관들이 설립되었고 여전히 많은 기부가 이루어지고 있는 도시이다.

우연인지 의도인지 몰라도, 마치 디자인과는 거리가 있어보이는 오래된 도시 신시내티에 의외로 많은 건축 볼거리들이 있다. 물론 대다수는 신시내티 대학내에 있는 건물들이다. 이 연재에서 다루지는 않았지만, 미국 서부의 건축을 이끌고 건축명문 Sci-Arc(싸이아크)의 학장을 지낸 톰 메인(Thom Mayne), 콜롬비아 대학 학장을 역임했던 베르나르 츄미 (Bernard Tschumi), 건축 이론의 대부이자 뉴욕5의 멤버인 피터 아이젠만 (Peter Eisenman), 지난호에서도 다루었던 프랭크 게리 (Frank O. Gehry),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으로 스타덤에 오르고 우리나라에서는 삼성동 현대산업개발 건물의 입면을 디자인한 건축가로 유명한 다니엘 리베스킨트 (Daniel Libeskind) 등, 이름만 들어도 건축인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건축가들의 작품들이 몰려있는 곳이 신시내티, 또 신시내티 대학이다. 재미난 사실은 이들 모두가 디컨스트럭티비즘이라는 건축사조를 따르는 건축가들이라는 것이다. 디컨스트럭티비즘(Deconstructivism, 탈구축론)은 러시아의 구성주의의 영향을 받아 현대 건축가들이 새로운 건축언어를 만들어내고자 시도했던 노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모더니즘(Modernism, 근대주의)라는 말은 건축에서 처음 사용된 말인데, 20세기 초반 기존의 건축에서 탈피해서 더 간결하고 대량생산 가능한 디자인을 모토로 하는 건축을 일반적으로 일컷는 말이다. 그런데 1960년대 이후부터 건축계에서는 지속적으로 이 모더니즘을 탈피하고자 지속적으로 노력했고, 여러 노력 중 하나가 1980년대 후반에 정립되기 시작한 디컨스트럭티비즘이다. 이들 건축은 앞서 언급하였듯이 대량생산을 전제로하는 모더니즘에서 탈피하고자 했기 때문에, 여러 면에 있어서 건축하기가 쉽지 않은 디자인이었다. 때문에 이들 부류에 속하는 건축가들의 작품을 실제로 본다는 것은 최근에서야 가능해졌는데, 이러한 점을 고려해보면 신시내티가 얼마나 건축가들에게 있어서는 ‘볼거리’가 많은 도시인가 가늠해볼 수 있다.

그 ‘볼거리’의 방점을 찍는 건물이 바로 자하 하디드 (Zaha Hadid)의 Center for Contemporary Art이다.

영웅이 잠들다

이 학회지에 연재를 하면서 처음으로 중복해서 건축가를 소개하게 되는 것 같다. 별다른 이유는 없고, 다만 건축가의 죽음에 대한 필자의 명복을 표현하고 싶고 그녀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또 한번 소개를 하는 것이니, 독자의 미리 양해를 부탁드린다.

지난 3월 31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뜬 자하 하디드의 소식은 건축계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소식을 조금 늦게 접한 사람들은 4월1일에 접하는 바람에 장국영의 죽음처럼 만우절 장난인줄 알았다) 그도그럴 것이 불과 60대 중반에, 요즘 세상에서는 나이가 들었다고 말하기도 힘든, 아직 창창한 나이에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것이 그녀의 건축을 더 이상 보지 못한다는 것 이상으로 충격적이었다. 사실 자하 하디드는 평생 구설수때문에 고생한 건축가이다. 이웃 일본의 뉴스이기 때문에 알고 있는 독자도 있겠지만, 최근에 자하 하디드는 공모전에서 당선되어 설계를 완료한 도쿄올림픽 주경기장의 설계안이 일본 건축가 그룹이 주도한 반대 움직임에 의해 폐기되고, 동료라고 생각하던 다른 일본 건축가 (쿠마 겐코)가 설계를 하게 되는 황당한 경우를 겪었다. 또 이전에는 중동에 설계한 건물의 공사현장에서 인부들이 죽었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사회적 지탄을 받기도 하였다. (실제로 자하 하디드가 이와 관련하여 ‘자신은 책임없다’라고 코멘트를 부적절하게 한 것은 맞지만, 그녀를 법적인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것은 문제가 있었다) 또 늘 예산안을 훌쩍 뛰어넘는 공사비 견적이 나오는 설계를 함에 따라 그 때마다 법적시비에 시달리고는 했다. 그녀의 건축가로서의 삶이 절대 순탄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물론 대다수의 건축가들이 많은 역경 속에서도 단순히 자신의 ‘작품’을 지켜내겠다는 소망 하나로 그 시달림을 이겨내야 하는 과정을 겪는다. 하지만 자하 하디드의 배경을 보면 다른 누구 보다도 건축가로서 힘든 시간을 보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전에도 언급하였지만, 자하 하디드는 이라크 출신의 여성건축가이며, 프리츠커를 수상한 여성 건축가 중에 유일하게 단독으로 수상하였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남자 파트너와 공동 수상한 여성 건축가가 많게 들리지만, 이 역시도 류에 니시자와와 함께 수상한 가즈요 세지마 한 명 밖에 없다.) 그만큼 자하 하디드는 ‘소수’ 중의 ‘소수’일 수 밖에 없는 건축계에서 굴지의 업적을 남긴다. 생각을 해 보라. 유럽에서 중동출신의 사람들이 받는 보이는, 또 보이지 않는 차별을. 필자도 유학생 신분으로 미국에 왔지만 사실 학생이라는 신분, 혹은 학교라는 바운더리 안에서는 차별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그 온실 밖으로 나가면 미국 사회도 여전히 (특히 동부는) 여러 종류의 차별이 보이지 않게 존재하는 걸 체감하게 된다. 다민족 사회를 표방하는 미국이 이러니 유럽에서 주로 활동한 자하 하디드가 (아무리 부유층 출신이라고는 하지만) 아랍인으로서 받은 차별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들어 여러 종류의 차별들이 문제가 되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건축계 내에서는 의외로 성차별이 적은 편에 속한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하지만, 이것이 클라이언트를 상대해야하고, 공무원들을 상대해야하고, 기성 사회를 상대하게 될 때에는 문제가 다르다. 이러한 부분에서 자하 하디드는 자신이 여성이라는 점과 또 아랍인이라는 커다란 핸디캡을 안고 사회와 부딪힌 건축가이고,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세계 건축에 하나의 획을 그엇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는 단순히 스타건축가라는 인식 이상의 인정을 받아야 마땅하다.

자하 하디드는 처음에 수학을 전공하였다가 후에 런던의 AA스쿨에서 건축을 수학하였다. 이후 1980년 그녀가 30살 때에 그녀의 설계사무소를 차리는데, 이후 10년간 그녀는 거의 아무 건물을 짓지 못하였다. 건축가에게 있어서 실제 지어지는 프로젝트가 없다는 이야기는 거의 굶어 죽어야 한다는 이야기와 같다. 그 10년을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는 모르나 (사실 많은 대가 건축가들이 초반 10여년 동안에는 이렇다할 작업들이 없는 경우가 많다) 1994년에 처음으로 300평이 채 안되는 소방서 건물을 스위스 바젤에 지었고, 이로인하여 자하 하디드는 자신의 스케치도 건물로 지을 수 있다는 확신을 세계 건축계에 줄 수 있었다. 왜냐하면 너무나도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찬사와 비평을 동시에 받던 건축가였기 때문이다. 그러던 자하 하디드가 처음으로, 그것도 건축에 있어서 상당히 보수적인 미국에 굴직한 규모의 건물을 설계한 것이 신시내티의 현대미술관 (Center for Contemporary Art)이다.

신시내티 다운타운에 있는 이 미술관은 사실 자하 하디드가 설계하기에는 너무나도 비좁은 땅이었다. 그녀는 보통 사람들의 움직임과 연관있는 수평적인 곡선을 이용하여 설계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 미술관 사이트는 굉장히 작은 면적의 대지에 위치하고 있다. 신시내티가 19세기 후반까지만해도 도시의 밀도가 뉴욕에 비교할 정도였으니, 다운타운에 여유로운 대지가 있을리 만무하기는 하다. 이러한 제약 속에서 자하 하디드는 램프같은 계단을 이용하여 수평적인 움직임을 수직적으로 잘 변환하였다. 대지의 조건과 보수적인 미국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아무리 초기작이었기는 하지만, 이 작품이 자하 하디드의 건축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굴직한 규모의 첫 작품이라는 의미때문에 이 미술관이 개관을 했을 때 많은 평론가들과 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필자가 방문하였을 때에는 우연히 미술가 서도호씨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는데, 너무 이른 아침이라 볼 수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곧 다른 지역으로 떠나야하는 사정을 들은 경비원이 먼저 필자에게 작품을 보여주겠다고 호의를 베푸는 행운을 얻게되었다. (아마도 로비에서 건축공간만 실컷 사진찍고 있어서 건축가였는지 예상했으리라) 그래서 잠시나마 그 경비원과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 그는 이 건물의 설계자인 자하 하디드가 최근에 타계한 것과, 이 건물이 그녀의 첫 메이저 건물, 첫 미국내 건물이라는 사실, 그리고 설계 과정에서 어떠한 어려움들이 있었는지 상세히 알고 있었다. 간혹 유럽에서는 이런 경우를 보기도 하지만, 미국에서 건축과 상관없는 사람이 건축에 대해서 사소한 것 까지 알고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유럽에서는 사람들이 미술과 음악 이야기를 하듯, 건축에 대해 알고 있고 이야기하는 것을 하나의 교양이라고 생각한다고 한 누군가의 말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훌륭한 공간이라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경비원과 싸움부터 해야 하고, 건축가라고 하면 부동산업자나 건설업자와 헷갈려하는 환경에서 건축 공부를 한 필자로서는 부러운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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