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NICE (News & Information for Chemical Engineers), No. 185

NICE (News & Information for Chemical Engineers), No. 185

영화 속의 도시, 도시 속의 건축 <도시 회생의 아이콘 빌바오>

임동우

오늘 다룰 영화와 도시는 우리에게도 이미 널리 알려진 워쇼스키 남매 감독의 <쥬피터 어센딩, Jupiter Ascending>에 잠시 등장하는 스페인의 빌바오이다. 2014년 작인 이 영화는 국내 시장에서 처참한 흥핵 성적을 거두었기 때문에 아마도 SF팬이나 워쇼스키 남매의 열혈팬이 아니라고 하면 다소 생소한 영화일 것이다. (사실 전 세계적으로 흥행에 참패했기때문에 국외라고 해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워쇼스키 남매 (당시는 형제)는 우리에게 <메트릭스>로 잘 알려져 있다. 당시 새 밀레니엄을 앞두고 종말 혹은 Y2K 버그 같은 사회불안요소가 팽배해 있을 때, 굉장히 우리의 원초적인 궁금증과 불안을 철학적으로 잘 긁어준 영화였다. 물론 이제 우리에게는 <메트릭스>의 화려한 영상이 더 기억에 남아있지만, 이 영화는 영화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챕터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후 메트릭스 시리즈에서의 실망스러운 모습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중은, 또한 영화 업계는 워쇼스키 남매에 대한 기대를 지니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필자 개인적으로는 <스피드 레이서, 2008년 작>, <클라우드 아틀라스, 2010년 작>을 통해 더 이상 이 남매에게 <메트릭스>와 같은 충격을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했다. 오늘 소개하는 <쥬피터 어센딩>은 그 판단에 최종 싸인을 한 격이다. 그나마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인기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어 스토리의 참신함이나 탄탄함이 조금이나마 버티고 있었지만, 워쇼스키 남매가 직접 각본을 쓴 <쥬피터 어센딩>은 그야말로 중구난방 영화이다.

이 영화에 조금이나마 점수를 줄 수 있는 것은, 많은 SF영화와는 다르게 여자주인공 쥬피터 (밀라 쿠니스 분)를 중심에 놓고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점에서 조금은 신선했다. 물론 여주인공이 수동적이고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블록버스터 영화들과 다를바 없었지만, 이러한 참신함(?) 덕분에 SF영화가 조금은 드라마처럼 느껴지는 효과는 있었다. (물론 이 효과가 긍적적인 효과라는 것은 아니다) 영화의 기본적인 전제는 우주를 통치하는 (거의) 전지전능한 아브라삭스 가문이 있는데, 지구는 이들이 관리하는 여러 행성 중 하나라는 점이다. 지구인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류와 비슷한 세팅을 하고 있는 영화이다. (실제로 이 영화에서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오마주한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쥬피터는 자신은 몰랐지만, 원래 그녀는 지구를 상속받는 아브라삭스 가문의 상속인이었으며, 영화는 그녀를 죽이고 지구를 차지하고자 하는 세 남매를 악당으로 등장시키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사실 요즘 처럼 마블코믹스를 필두로 하는 초득급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한 해에도 몇 개씩 줄줄이 개봉하고, 영상의 완성도와 이야기의 몰입도가 점점 상승하는 추세에서 <쥬피터 어센딩>이 갖는 위치는 어딘지 모르게 애매하다. 반드시 장르에 국한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장르 영화가 갖는 힘이 있는데, 이 영화는 처럼 SF 영화가 가질 수 있는 특유의 기발한 상상력으로 호기심을 자극하지도 않고, <어벤저스> 시리즈처럼 블록버스터가 갖는 호쾌하고 완성도 있는 액션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차라리 <트와일라이트> 처럼 모르는 사람들이 봤을 때는 단순히 뱀파이어 영화인 줄 알았다가, 알고보니 굉장히 달달한 청춘멜로영화인, 그런 드라마를 만들기라도 했어야 하는데, <쥬피터 에센딩>은 그야말로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영상 역시 워쇼스키 남매 스스로 이전 작인 <클라우드 아틀라스> 보다 못한 영상미를 보여준다. 유일한 볼거리라고 하는 것은 이전 작에서 감독들과 함께 호흡을 맞춘 배두나가 또 한번 출연한다는 정도라고 해야 할 정도이다. 아마도 이들이 (감독하지는 않고) 제작에만 참여했던 <브이 포 벤데타>가 없었다고 하면, 이 감독들은 아마 이미 고사 직전까지 갔을 수도 있다. (참고로 <브이 포 벤데타>는 꽤나 수작이다) 이쯤되면 크라우드 펀딩(crowdfunding)을 통해 제작했다고 하는 <클라우드 아틀라스>가 메이저 제작사에서 투자를 못 받아 그렇게 진행한게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기도 한다.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챙겨본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아무리 계속된 실망을 안겨준다고 해도 <메트릭스>의 감독이기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보게 된 것이고 (아마 다음번 작품도 보게되지 않을까 싶다), 두번째는 이 영화에 그 유명한 빌바오의 구겐하임 뮤지움이 나온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스페인의 탄광도시 빌바오-

영화의 도입부에 위에서 언급한 아브라삭스 가문의 세남매이 함께 등장하는 씬이 있는데, 이곳이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빌바오의 구겐하임 뮤지움을 모티브로 하여 재구성한 상상 속의 도시이다. 구겐하임에 약간의 변형을 가하기는 하였지만, 하나의 도시의 모습을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건축들로 채워 넣었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운 볼거리이며, 그의 건축 언어에 따라 도시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SF영화 속 상상 속의 도시처럼 보이게 하는 프랭크 게리의 독특한 건축 언어 역시 놀랍다.

오래전부터 제철공업이 발달했던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역의 작은 도시 빌바오는 대부분 산업국가의 도시들이 그러하듯, 제철 산업이 스페인에서 점차 빠져나가 미국과 아시아로 넘어가면서 쇠퇴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 빌바오시는 도시를 ‘문화의 도시’로 만들겠다고 천명하며 문화를 도시 재생의 키워드로 제시하였다. 지금은 결과론적으로 굉장히 성공한 사례가 되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대도시가 아닌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문화를 소비하게끔 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쉽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앞선 글에서도 런던의 Tate Modern이 도시 재생의 일환으로 기존의 화력발전소를 디자인에 적극 활용한 Herzog & DeMeuron 의 프로젝트가 선정되었다고 언급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격’이 다른 도시 런던의 이야기일 뿐이다. 바르셀로나도, 마드리드도 아닌 이들 도시에서 4~5시간이나 떨어진 인구 40만의 작은 도시 빌바오에서 세계적인 문화사업을 추진한다고 하니,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이 적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정선 카지노가 그러했듯, 많은 사람들이, 혹은 많은 행정가들이 생각해 낼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은 레저 및 유흥시설일 것이다. 하지만 빌바오는 세계적인 미술관 재단인 구겐하임 (Guggenheim)을 설득시킴으로서 레저시설이나 유흥시설이 절대 가져다 줄 수 없는 ‘격’을 빌바오에 입히는 데 성공하였다.

아마도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빌바오가 바스크 자치정부 산하의 도시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스페인의 바스크지역 (스페인 북부)의 역사는 너무나 복잡하고 민감해서 필자도 정확히 알고 있지는 못하지만, 아무튼 예전부터 이 지역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하고자 하는 지역으로서 문화적으로도 독립된 문화와 언어를 갖고 있다고 알고 있다. 이러한 배경때문인지 바스크지역의 빌바오는 독립적으로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에서도 상상하기 힘든 구겐하임 뮤지움을 짓는 계획을 세울 수 있었던 듯 하다. 간단히 상상을 해보라. 이전까지 구겐하임은 예술작품을 수집, 전시하기 시작했던 베니스의 페기 구겐하임과, 미국의 건축 거장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뉴욕의 솔로몬 구겐하임 등, 두 개의 세계적인 관광도시에 밖에 없었는데, 감히(?) 스페인 시골의 작은 이름 없는 도시 빌바오에서 구겐하임을 런칭하겠다고 한 것이다. 철강산업으로 성장한 Solomon R. Guggenheim 의 배경때문인지 몰라도, 어찌되었던 철강의 도시 빌바오에 구겐하임이 지어지게 된다.

-스타 아키텍트 Frank Gehry-

1990년대 구겐하임은 세 명의 건축가를 지명하여 구겐하임 빌바오 공모전을 실시했다. 이미 전세계적으로 유명했던 일본 건축가 아라타 이소자키와, 지금은 부산국제 영화제 영화의 전당 건축가로 우리에게 알려진 오스트리아의 쿱 힘멜브라우, 그리고 (캐나다 태생이지만) 미국의 프랭크 게리가 지명되었다. 구겐하임 재단은 이미 1950년대에 뉴욕의 한복판에 미국이 사랑해 마지 않는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Frank Lloyd Wright)에게 설계를 의뢰해 전세계에 충격을 안겨준 미술관을 건립해본 경험이 있는 재단이다. 뉴욕 구겐하임은 반듯반듯한 뉴욕의 질서에 곡면의 입체로서 생동감을 불어 넣어주고 있고, 내부의 경사를 이용한 전시 동선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시도였다. 반세기가 지난 건물이지만 아직도 뉴욕에서 가장 사랑받는 미술관 중에 하나이고, 필자의 사견으로는 그 이후 어떤 뉴욕의 미술관도 건축적으로 구겐하임 뮤지움보다 더 큰 충격을 준 사례는 없다고 생각한다.

거의 반세기만에 세계 유명도시도 아닌 스페인의 빌바오에 미술관을 짓는다고 결정했을 때, 구겐하임 재단은 이미 뉴욕 구겐하임 뮤지움만큼, 혹은 그 이상의 충격을 줄 수 있는 건축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이미 건축이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감동과 매력을 줄 수 있는) 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미 실험적인 건축으로 사랑을 받고 있던 건축가들을 지명했었을 것이고, 그 중에서도 가장 파격(?)적인 건축을 선보인 프랭크 게리의 안을 선정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프랭크 게리의 재미난 루머가 있는데, 그가 건축계의 수면 위에 등장하기 이전에, 미국 건축주들이 너무나도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스타일을 좋아해서 그의 건축 스타일을 따라했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진위여부는 분명치 않고, 아마도 유태인 성인 Goldberg를 버리고 Gehry로 바꾼 젊은 시절 전력때문에 생긴 소문일 수도 있다)

사실 게리의 건축은 너무나도 파격적이어서 건축 기술이 발달하지 않으면 실현하기 힘든 부분이 많았다. 그의 건축양식을 건축에서는 Deconstructivism (디콘스트럭티비즘)의 일부라고 이야기하는데, 이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건축의 요소와 공법들을 완전히 해체해서 새롭게 재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1980년대에 새로운 건축을 시도해보겠다고 하는 몇몇의 건축가들에 의해서 시작된 도전인데, 이것이 개념적으로야 쉽게 설명이 되지만, 건축은 ‘구축’을 해야 의미가 있는 분야인 만큼 이러한 양식으로 새로운 건축물을 짓는다는 것이 그다지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설계과정 중에, 또 건축 과정 중에 끊임 없이 새로운 기술과 방식에 도전하여 프랭크 게리는 구겐하임 빌바오를 멋지게 탄생시켰다. 이는 건축을 아는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이건, 그 동안 프랭크 게리라는 사람을 알았건 몰랐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충격을 전해주었고, 프랭크 게리 역시 자신의 건축 실험에 있어서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는 전환점이 된 프로젝트이다. 스타 아키텍트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 이전에도 건축계에서는 프랭크 게리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지만, 이제는 건축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조금이라도 문화에 관심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가 에드워드 호퍼를 이야기하듯 프랭크 게리를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건축계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이 이렇게 흔하게 접하는 연예인과 같은 건축가는 흔치 않은 경우인데, 프랭크 게리는 그야말로 스타 아키텍트가 된 것이다.

-빌바오=구겐하임-

구겐하임 빌바오가 1997년에 완공되었으니 (공모전은 1991년) 1929년 생 프랭크 게리가 거의 일흔살에 가까웠을 때 완성한 작품이다. 그리고 이미 여든이 훌쩍 넘은 그가 아직도 활발한 창작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해준 작품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히 꾸준히 새로운 형태를 추구하고 도전해온 것이 사실이지만, 또 건축가라는 직업이 은퇴 없이 계속 할 수 있는 직업 중에 하나인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나라 기준으로 ‘나이든’ 건축가가 세상에 이렇게 파격적인 건축물을 내 놓는 다는 것은 쉽게 상상하기 힘든 부분이다. 하지만 새로운 재료와 새로운 형태로서 하나의 예술작품을 빚어낸 게리는 빌바오가 구겐하임의 도시가 될 수 있도록 일조하였다.

빌바오에서 이 미술관을 기획할 당시 연간 35만명이 다녀갈 것이라는 장미빛 계획을 세웠다. 당시 인구 40여만명의 도시에 미술관에 35만명이 다녀간다고 계획을 하였으니 어떻게 보면 과한 기대였던 듯 하다. 하지만 게리의 구겐하임은 개관 첫 해에만 135만명이 다녀가는 경이적인 역사를 썼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이곳은 바르셀로나가 아니다. 필자 역시 이곳을 가기 위해 바르셀로나에서 밤 기차를 타고 아주 이른 새벽녁에 빌바오에 도착해 티타늄 외관에 반사된 일출의 색다른 빛깔을 경험한 기억이 있다. 우리가 과천 현대미술관에 가듯이 쉽게 다녀올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현상은 빌바오 효과 (Bilbao Effect)라는 신조어까지 탄생시키며 여러 경제효과에 대한 연구를 생산해냈다.

구겐하임 뮤지움을 보자고 하면, 당연히 화려한 외관에 먼저 매료될 것이다. 우리가 흔히 보지 못하는 비정형의 형태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감쌌는지도 가늠하기 힘든 티타늄의 재료는 돌과 벽돌이 주되게 사용되던 빌바오의 건축에 완전히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빌바오 뮤지움의 외관상 가장 큰 매력은, 건물의 전후좌우가 없다는 점이다. 물론 뮤지움으로의 입구는 그 유명한 조각가 Jeff Koons의 꽃강아지가 있는 도시쪽에 나 있지만, 그곳을 정면이라고 하기에는 반대편 강가에서 바라보는 빌바오 뮤지움의 모습이 가히 충격적이다. 이는 측면에서의 모습 역시 마찬가지이다. 게리의 비정형 디자인에서 나오는 이미지의 다양성은 건물의 모습을 360도 돌아가며 관찰해도 항상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자칫 지루해 질 수 있는 ‘충격요법’이 언제봐도 새롭도록 할 수 있는 게리의 힘이기도 하다. 또한, 앞서 잠시 언급했지만, 외관의 티타늄 재료는 주변의 색깔을 교묘하게 반사시킴으로서 시간과 계절, 그리고 날씨에 따라 뮤지움의 느낌이 계속해서 달라지게끔 한다. 이 부분에서, 메탈이라는 차가운 재료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뮤지움을 접하게 되면 차갑기 보다는 오히려 따뜻한 느낌을 가질 수 있게해 주는 것이다.

흔히 게리 건물의 ‘희한한’ 형태의 외관을 보고, 그의 건물의 내부공간은 막상 외부와는 다를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부 공간은 다른 여타 건물들과 비슷하고, 외부만 휘황찬란하게 꾸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생각은 틀렸다. 그의 건축작업 프로세스를 보면 항상 공간을 먼저 구성하고 외피를 나중에 입히고, 따라서 외부에서 보이는 과감한 작업은 내부의 공간에서부터 시작하곤 한다. 그가 흔히 취하는 방식은, 내부에서 예상 외의 공간들을 접하게끔 하면서, 동시에 내부에 있을때에도 외부에 있는 느낌이 나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구겐하임 빌바오 뮤지움이나 그의 다른 걸작인 MIT Stata 센터의 내부를 걷다보면, 자신이 하나의 새로운 ‘원더랜드’의 길을 걷고 있는 느낌을 준다. 외부에서는 도시 속에 게리의 세상이 있다고 하면, 내부에서는 온연히 게리 세상 뿐이다. 이러한 면에서, <쥬피터 어센딩>에 나온 게리 양식으로 채워진 도시의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영화에서 보는 모습이 게리 작품의 내부 공간에서 느껴지는 모습과 중첩되기 때문이다.

구겐하임 빌바오는 아마도 왠만한 내공의 건축가뿐만 아니라 프랭크 게리 스스로에게서도 다시는 나오기 힘든 걸작일 듯 하다. 그가 이후 완공한 LA의 디즈니 콘서트 홀이나, 프랑스의 루이비통 뮤지움 모두 구겐하임때만큼의 충격은 못 주는 것 같다. 한편으로 안타까운 것은 이 빌바오 효과에 관한 것이다. 많은 경제학자들의 연구대상이 되기도 하는 이 효과는 매우 부정적인 효과를 낳기도 했기 때문이다. 빌바오시에는 긍정적인 효과가 더 많았을지는 모르지만, 이를 무턱대고 따라하는 전 세계의 많은 도시들에서 수많은 재정적자를 야기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라고 다르지 않다. 물론 위락산업으로 지방의 경제를 살려보겠다고 하는 것보다야 문화산업으로 재생시키겠다고 하는 계획이 나쁠리 없다. 하지만 제 아무리 프랭크 게리가 와서 또 하나의 뮤지움을 짓는 들, 그것이 주변의 물리적, 사회적, 행정적 인프라와 잘 결합되지 않으면 그 프로젝트들은 쉽게 낙동강 오리알 되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빌바오는 사실 구겐하임만 유치한 것이 아니라, 더 큰 장기 마스터플랜을 이미 세워놓고 그 중 하나로 구겐하임 뮤지움을 세운 것이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그 마스터플랜을 조금씩 실행해 나아가고 있다. ‘충격적인’ 건축이 하나의 기폭제가 되어 여러 도시의 변화를 이끌어 나아가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는 있지만, 그 건축 자체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 될 것이라는 생각은 손 쉬운 상술에 불과할 것이다. 한 때 XX시의 랜드마크를 만들겠다고 하는 도시들이 많았고 또 여전히 많다. (왜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도시의 랜드마크를 만드는 일은 의외로 간단하다. 땅과 돈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곳을 명소(名所)로 만드는 데에는 땅과 돈이 아니라 사람이 필요하다. 건축은 단지 그 사람들을 잘 담아낼 수 있으면 그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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