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의 도시, 그리고 도시 속의 건축 <런던; 도시발달의 프런티어>
임동우
작년 한 해 동안 북미 도시 2개 (보스톤, 시애틀), 유럽 도시 2개 (베를린, 비엔나), 그리고 아시아 도시 2개(가나자와, 항저우)를 둘러보았다. 여러 도시 들을 돌면서 중점적으로 소개하고자 했던 것은 물론 도시의 이야기도 있지만, 아무래도 건축가와 건축이었다. 제일 처음 소개했던 Diller+Scofidio 를 제외하고는 모두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건축가들을 소개하였는데, (아마도 딜러 스코피디오도 조만간 상을 받을 것이다) 이는 건축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이 조금 더 현대건축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우리가 흔히 해외 여행을 가면 기념사진을 찍는다. 요즘에야 모두 카메라가 달린 핸드폰을 갖고 다녀서 어딜가나 셀카 사진을 찍고 음식 사진을 찍고 소소한 장면 등을 찍는 것에 익숙하지만, 묵직한 카메라를 들고 다녀야하고, 필름 조차 아까워 여행다니며 꼭 필요한 곳에서만 ‘기념사진’을 찍었던 시절에만 하더라도 그 사진들은 대부분 건축을 배경으로 하는 사진이었다. 파리에 가서 에펠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샹젤리제 거리에서 사진을 찍고, 루브르 박물관의 피라미드 앞에서 사진을 찍는 것은 파리 여행의 가장 기본일 것이다. 이는 아마도 훌륭한 건축물과 여러 건축들이 결합되어 나타나는 도시의 모습이 그 도시의 문화와 역사 등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우리가 자연으로 떠나는 것이 아니라 도시로 여행을 간다고 하면, 우리가 인식하건 인식하지 못하건, 그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곳을 배경삼아 기념사진을 남기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이미 많은 관광 명소들은 오래된 건축과 도시 안에 그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녹아들어있는 곳들이다. 이러한 도시의 역사에 새로운 역사를 입혀나가는 것이 현대건축가들의 몫이다. 앞서 프리츠커 상을 이야기 하였지만, 훌륭한 건축가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역사와 문화를 건축에 담아내는 건축가의 역할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건축가라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위의 상이 기준이 될 수는 절대 없지만, 전반적으로 건축계 내에서 ‘대가’라고 인식되는 건축가들은 단순히 클라이언트의 요구만 듣는 건축가가 아니라, 건축 혹은 건축가의 더 큰 역할에 대해서 인식하고 그것을 작업에 담아내고자 하는 건축가들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독자들에게 이미 잘 알려진 이전 세대의 건축보다는 현대의 건축을 소개하여 독자들에게 폭넓은 건축을 이해할 수 있는 촉진제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글들의 의미라면 의미일 수 있겠다.
한 해 동안의 연재를 마치고, 새해로 접어들면서 서론이 길었는데,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도시는 런던이다. 그런데 소개하고자 하는 영화의 배경은 런던이 아니다. 아마도 런던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달콤한 로맨스물서부터, 중세시절을 다룬 드라마, 또 첩보 영화나 액션물 등 다양한 장르의 다양한 영화가 런던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수 많은 영화들이 있지만, 굳이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아이 앰 러브>를 선택한 이유는 딱 두 가지이다. 하나는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에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영화 내에서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건축가와 작품이 직접 언급되기 때문이다. 사실 이 영화의 배경은 이탈리아의 밀라노 인근이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여자 배우 중 전세계 탑이라고 생각하는 틸다 스윈튼 (우리나라에서는 설국열차로 익숙할 것이다)이 엠마라는 역할로 출연한 영화이다. 사실 영화 자체의 스토리는 그다지 새로울 것은 없다. 이탈리아의 부자 가문에 시집을 오면서 자기 고향 러시아를 떠난 엠마가 젊은 청년 (게다가 아들의 친구) 안토니오를 만나면서 새로운 삶의 활력을 찾는 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내용이 진부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또 그렇다고 해서 아주 새로운 내용의 드라마는 아니다. 결국 이러한 스토리의 영화는 영화가 어떠한 장치들을 통해서 관객의 몰입도를 극대화 시키느냐에 달려있다.
30대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아이 앰 러브>를 연출한 루카 구아다니노는 공간의 대비를 통해서 엠마의 두 개의 삶을 조명한다. 엠마의 가족과 그들과의 관계는 대부분 그들이 속해있는 대저택에서 그려지는데, 이 공간은 대저택임과 동시에 매우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이다. 이탈리아 대저택의 대리석에서 나타나는 건축의 무거움이 엠마의 감정을 대변하고 있다. 그래서 제3자가 보면 아무 문제 없는 탄탄한 가정이지만, 그 안의 엠마는 점차 스스로 압박을 받아가고 있는 것이다. 반면, 안토니오와의 관계는, 일상의 공간, 즉 밀라노 대저택이 아닌, 시골의 탁트인 자연환경에서 발전한다. 햇살은 따갑고 공간은 열려있으며 모든 자유가 허락된 장소인 듯 보인다. 이는 엠마와 안토니오의 관계가 어떻게 묘사되는 것과는 별개로, 이미 관객들에게 숨트이는 공간을 보여줌으로서 엠마의 자유를 공감하게끔 하는 효과를 만들어 낸다. 비지니스 맨이자 가업을 잇고 또 동시에 공동 후계자인 아들(에두아르도)을 경계하는 남편과, 아들의 절친한 친구이자 안정된 상태란 전혀 없어보이는 요리사 안토니오의 인물간의 대비 역시 재미있는 설정이다. 결국 세 남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에 에두아르도라는 제4의 인물이 개입되면서 이야기는 깊어진다. 에두아르도의 죽음이 엠마의 마음의 결정을 하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발레에서 흑조와 백조가 연기하 듯, 모든 것을 대비를 통해서 연출한다. 하지만 그 연출이 억지스럽지 않고 매우 정교한 장치를 통해 영화에 드러나기 때문에, 관객들은 시간이 지날 수록 주인공에 대한 감정 이입이 되어가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 한 것 처럼, 엠마의 아들 에두아르도는 엠마와 안토니오를 만나게 해주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어 주는 인물이자, 가업의 후계문제에 있어서도 아버지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함으로서 가정 내의 긴장감을 높이는 인물로서, 단순할 수 있는 영화의 스토리에 깊이감을 더해주는 역할을 한다. 가업을 물려받아 비지니스맨이 되어야 하는 에두아르도는 사실 그 쪽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스포츠와 문화에 관심을 많이 갖는다. 그의 성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그가 런던에서 헤르족&드뮤론이 한 테이트 모던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이다. 영화의 후반부에 가면 런던에서 회사의 매각을 성사시키는 에두아르도의 아버지의 모습이 나오는데, 이 역시 아들과 아버지가 밀라노를 넘어 더 큰 세상인 런던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는지 잘 대비시키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도시의 프런티어>
런던은 우리가 잘 알 듯이 산업혁명 이전까지는 유럽의 변방에 가까운 도시였다. 섬나라인 영국에 있었던 관계로 로마의 문화나 고딕, 르네상스 등의 문화가 유럽대륙 내에서 활발히 전개되던 것에 비하면 런던은 그 문화의 중심이라기 보다는 변방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하던 것이 산업혁명을 이루고 1820년대에 처음으로 백만명의 도시가 되며 이후 베이징을 제치고 전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가 되었다. 이후 1930년대에 뉴욕이 가장 큰 도시로 성장하기 전 까지 런던은 약 백여년간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로서 군림하였다. 이제는 런던보다 큰 규모의 도시들이 전 세계적으로 스무개도 더 되지만, 도시 발달의 역사에 있어서 런던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런던 이전의 도시는 근대화된 산업과 인프라스트럭쳐가 부재하였으나, 런던이라는 도시가 발달하면서 현재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지하철, 상하수시설, 자동차 도로 등등이 근대화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런던은 항상 도시 발달에 있어서 최전방에 있는 듯 하다. 서울을 비롯하여 현대의 많은 도시들은 런던의 모델을 답습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모델이라고 하는 것이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1) 2차 산업의 성장 2) 노동력 유입으로 인한 도시의 팽창 3) 도시화 문제 발생 4) 다른 도시/국가에 산업 이전 5) 3차 산업 중심의 도시로 탈바꿈. 이 정도의 단계를 거치는데, 앞서 언급한 런던보다 크다고 하는 스물 몇 개의 도시들도 런던의 모델을 따라 발달해 왔다. 어떤 도시들은 이미 5번째 단계에 와있고 또 어떤 도시들은 2단계에서 이미 런던 보다 큰 도시를 형성하고 있기도 하다. 아마도 서울은 4단계에서 5단계로 넘어가고 있는 과정이 아닐까 한다.
런던과 같이 이미 5단계에 진입해 있는 도시들이 갖는 특징이 도시 내에 많은 산업시설이 더 이상 유용하지가 않다는 점이다. 지난 세기에 산업화와 동시에 많은 성장을 이룬 유럽의 도시들과 몇몇 미국의 도시들이 이러한 변화를 겪고 있는데, 때문에 이러한 도시들에 가 보면 이전 세기의 유산인 공장 시설들을 어떻게 ‘재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고, 이미 상당히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다. 많은 경우 주거시설이나 오피스 용도로 개조가 되기도 하고, 또 상당한 경우에서 문화시설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최근 서울의 상수동 일대가 많은 변화를 겪고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상수동 관련해서 재미난 일화가 있는데, 십년도 더 전에 필자가 술자리에서 부동산쪽 투자를 담당하는 몇몇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다. 당시에 필자는 도시발달의 단계를 논리로 앞으로 상수동이 뜰 것이라고 하였고, 그 지인들은 그 의견에 반대하며 다른 지역들을 거론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최근들어 상수동에는 이미 너무 많은 자본이 들어가서 비싸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늘 그 당시의 이야기가 생각나곤 한다. 건축하는 사람들은 부동산을 도시의 발달과 주거 문화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많이 보기 때문에, 종종 다른 관점으로 부동산을 예측(?)하는 경우가 있다. 아마도 필자에게 누군가 물어본다고 하면, 상수동이나 문래동 같은 공장 단지 지역에 로프트 타입의 주거 형식이 우리나라에도 슬슬 생기지 않을까 조심스레 이야기해줄 것 같다. 공장 건물을 변형해 주거로 사용하는 형식은 이미 서양의 많은 도시들에서 성공적으로 시도된 형식인데, 이는 자녀가 있는 가족보다는 1인 혹은 2인 가정이 많아지면서 새롭게 생기는 수요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너무 밖으로 샛는데, 다시 런던으로 돌아오자면, 세계에서 가장 활발했던 산업 도시 중의 하나였던 런던 역시 이러한 산업유산이 많고, 전세계 어디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이 유산을 활용하는 정책을 많이 펼치는 도시이다. 이러한 문화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오늘 건축작품으로 소개하고자 하는 “Tate Modern” 이다.
<도시의 역사를 축적하는 건축>
테이트 모던은 이제 런던을 찾는 사람이라고 하면 반드시 방문해야할 곳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 미술관이 위치한 뱅크사이드는 원래 런던을 방문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런더너에게도 그다지 인기있는 장소는 아니었다. 특히 테이트 모던 미술관을 담고 있는 건물은 20세기 중반에 화력발전소로 지어진 건물이었는데, 이는 80년대서부터는 기능을 상실하고 사실상 방치되어 있는 상태였으니, 이 거대한 방치된 건물 주변의 환경이 어떠했을 것이라고 하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테이트 그룹은 이 거대한 건물을 부지로 삼고 새로운 미술관을 설립하는 계획을 세우고 국제공모전을 추진한다. 이 때에 혜성처럼 등장한 건축가가 Herzog & de Meuron 이다. 헤르족&드뮤론은 죽마고우인 Jacque Herzog 와 Pierre de Meuron 가 운영하는 스위스를 기반으로하는 설계사무소이다. 이들은 테이트 모던 이전에도 새로운 재료에 대한 시도들로 건축계에서 조금씩 조명을 받고 있었던 그룹이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40대 초중반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전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테이트 모던의 공모전에 당선되면서 그들의 이름을 건축계에 각인시켰고, 그 후 10년이 채 안되어 2001년에 프리츠커 프라이즈를 수상(첫 공동수상)하였다. 아직 한국에 한 프로젝트는 없지만, 한국 사람들에게는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이나 도쿄 오모테산도 거리에 있는 프라다 매장으로 익숙할 수도 있는 건축가이다.
공모전 당시 이들의 제안이 파격적이었던 이유는, 이들이 기존에 있었던 화력발전소의 건물을 대부분 유지하면서 새로운 공간을 제안하였기 때문이다. 렘콜하스, 데이빗 치퍼필드, 안도 타다오 등 많은 명성있는 건축가들이 같은 공모전에 참여를 하였고, 이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정도 기존 건물에 대한 기억을 남기고자 하였다. 하지만 헤르족&드뮤론은 언뜻 밖에서 보면 무엇이 바뀌었는지도 모를정도로 (심지어는 굴뚝조차 남겨놓았다) 기존의 발전소 모습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미술관을 만들었다. 이것이 당시에 주목을 받고 중요한 전환점으로 생각되는 이유가, 도시에 존재하는 기능을 상실한 옛 유산이 어떻게 새로운 기능으로 재탄생하면서도 역사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축적해 나아갈 수 있는가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물론 공장 건물을 이용하여 새로운 기능을 덧입히는 것이 처음 시도되는 것은 아니지만, 테이트 모던 프로젝트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도시의 역사를 축적하는 건축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은 사실이다. 비슷한 시기에 우리나라에서는 경복궁안에 위치하고 있던 총독부 건물을 폭파/해체하고 있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테이트 모던을 방문해본 사람들은 공통되게 느끼는 것이겠지만, 이 미술관의 가장 인상적인 공간은 미술관으로 진입하자마자 경험할 수 있는 (하지만 너무 거대해서 체험의 단계를 넘어서는 것만 같은) 공간이다. 특히나 한국에는 이러한 대형 산업시설이 공공시설로 바뀐 사례가 아직 많지 않은 관계로, 한국 사람으로서 이 공간에 들어가면 마치 SF 영화 속 세팅에 들어온 느낌까지 든다. 이 공간은 진입하면서부터 경사가 져서 사람들을 안쪽으로 빨아들이고 있는데, 파리의 퐁피두 센터의 외부광장이 경사가 진 것과 비슷한 효과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더욱더 중요한 점은 이 공간은 ‘무료입장’ 가능한 공간이라는 것이다. 물론 대영박물관 등 런던에는 무료입장이 가능한 미술관/박물관이 많지만, 현대미술 위주의 테이트 모던이 이렇게 거대한 전시공간을 공공에 제공한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뉴욕의 MoMA에서 티켓을 끊지 않으면 모마스토어나 기웃거릴 수 밖에 없는 것과는 매우 다른 가치관이다. 뉴욕의 MoMA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최근 모마는 확장을 위해 바로 옆의 American Folk Museum 을 매입해 철거하기로 결정하는 바람에 많은 뭇매를 맞았다. 무너져가던 건물을 철거하는 것도 아니고, 특히 미술관이라고 하는 주체가 다른 미술관을 철거한다는 소식에 사회의 많은 지탄을 받았다. 수명을 다한 공장건물을 재탄생시켜서 공공의 공간으로 만드는 런던의 테이트 모던과 사뭇 다른 관점의 접근이라고 생각된다.
최근들어 ‘재생’이라고 하는 단어가 많은 지자체에서 화두가 되고 있다. 덩달아 건축계에서도 재생에 관한 상당히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테이트 모던이 그러했듯, 많은 건축물들이 철거되기보다는 어떻게 새로운 시설로 거듭날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진행되는 중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재생이라고 하는 것이 건물에 함축적으로 나타나는 도시 역사의 축적이고 앞으로 만들어 나아가야할 역사의 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건물의 가치를 따져 존치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떠한 방식으로 역사를 만들어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문제인 것이다. 마치 하나의 역사관만이 역사를 대변할 수 없듯이 하나의 가치관으로 도시를 만들어 낼 수도 없는 것이다. 도시의 이야기는 건축에 녹아들어 축적이 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고 다시 재생산되기도 하면서, 다양한 이야기들로 구성이 되고 그것이 깊이 있는 도시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이제는 규모로서 세계 제1의 도시가 아닌 런던을 아직도 도시 발달의 최전방에 있는 도시라고 생각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