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의도시, 그리고 도시 속의 건축 <Before Sunrise ; 낭만의 도시 빈>
임동우
지난 2회에 걸쳐 미국의 도시 두 곳을 살펴보았으니, 이제 유럽의 도시와 건축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유럽의 도시들은 아마 우리에게 훨씬 더 친숙한 도시들이 많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생때부터 유럽여행은 마치 하나의 숙제처럼 여겨져서 어떠한 형태로든, 배낭여행이던, 단체관광이던 테마여행이던, 다녀온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유럽의 한 두개 도시를 특수한 목적하에 방문하는 경우가 아니라 ‘유럽여행’이 목적인 경우, 많은 경우 파리 IN, 런던 OUT이라는 전형적인 경로를 통해 서유럽의 여러 국가와 도시들을 방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Central Europe에 속하는 오스트리아의 빈나 체코 프라하는 우선순위에서 살짝 밀리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 필자에게 유럽을 처음 가본다고 어디 가야하냐고 물어보면, 필자 역시 (가장 좋아하는 도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파리를 추천할 수 밖에 없다. 그만큼 파리는 유럽의 역사와 문화가 한 데 집결되어 있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파리만큼이나 낭만적인 도시 빈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리고 만약 누군가가 빈는 낭만의 도시라고 이야기 한다고 하면, 이는 십중팔구 <비포선라이즈 Before Sunrise>때문일 것이다.
<비포선라이즈>는 개봉 당시보다 오히려 이후 각각 9년의 시간 차이를 두고<비포선셋>, <비포미드나잇> 을 개봉함으로서 더 화제가 되고 회자된 영화일 것이다. 동일한 감독이 동일한 주인공들과 함께 근 20여년이라는 기간 동안 하나의 시리즈 (처음 기획이 시리즈 물은 아니었겠지만)을 완성한다는 것 만으로도 주목받기에 충분한 영화이다. 독특한 점은 감독인 리차드 링클레이터 (Richard Linklater)는 한 소년이 성장해 가는 과정을 동일한 출연 배우들과 함께 12년이라는 기간 동안 촬영을 하여 화제가 된 <보이후드>의 감독이라는 점이다. 이쯤 되면 감독이 영화의 이야기와 영화 속의 배우, 또 영화 밖 현실의 배우간의 경계를 허무는 것에 도가 텄다고 볼 수도 있겠다. <비포선라이즈>는 기차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파리 출신인 셀린느(줄리 델피 분)와 미국인 청년 제시(에단 호크 분)는 우연히 자리를 같이하게 되면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흔한 로멘스 장르의 형식을 따르기 보다는 오히려 로드무비처럼 주인공들의 동선을 충실히 따라가며 그들의 감정 변화의 선을 섬세히 묘사하고 있다. 특히 감독은 이 초반의 기차씬에 거의 20분을 할애하고 있는데, 할애된 시간만큼이나 셀린느와 제시의 충동적인 듯 보이지만 또 충동이라고만 해석할 수 없는 그들의 ‘결정’ (함께 하루를 빈에서 보내겠다고 하는)을 관객들에게 충분히 이해시키고 있고, 그 만큼 관객은 셀린느건 제시건 둘 중 하나에게 자신을 이입하기 수월해지는 것이다.
빈라고 하는 배경은 영화 속에서 ‘이방’의 도시이면서 동시에 ‘친근한’ 도시이다. 제시와 셀린느가 충동적인 ‘일탈’을 결심하는 데에 있어서 그 공간은 우리에게 익숙한 런던이나 파리여서는 곤란하다. 앞서 언급하였 듯이 빈는 서유럽에서는 물리적으로 거리가 있는 도시이다. 그만큼 이방도시의 배경으로 삼기에 적햅했는지도 모른다. 또 동시에, 이방도시를 배경으로 한다고 하여 갑자기 독일의 공업 도시인 슈트트가르트를 선택하는 것도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 (필자 역시 슈트트가르트를 좋아하지만 빈 만큼의 낭만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영화 속 이야기의 전개를 보았을 때, 현실과 몽상 그 어딘가를 표현하는데에 빈의 도시적 배경이 매우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후 <비포어>시리즈의 배경을 보면 이해가 쉬운데, 2번째 영화였던 <비포어선셋>은 현실적인 파리가, 시리즈의 마지막인 <비포어미드나이트>에서는 몽상적인 그리스 해변이 그 배경이 됨으로서 감독이 이야기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색깔이 각기 다른 배경에서 묻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잠시 언급했 듯이, 영화는 도시를 활보하는 두 주인공을 충실히 따라가는 로드무비 성격을 갖는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흐름에 따라 두 남녀의 감정선이 변화하는 것을 보는 재미도 있지만, 동시에 영화를 보는 내내 펼쳐지는 빈의 여러 도시 풍경들이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하기도 한다. 특히 내부보다는 외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셀린느와 제시 덕분에 빈 풍경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도나우 강이나 궁전, 성당 등 낭만적인 배경을 담고 있을 때도 있지만, 또 그래피티로 가득차 있는 벽들이 있는 게토가 나오기도 한다. 이처럼 완전히 다른 성격의 모습들이 공존하는 곳이 빈이다. 빈은 한 때 찬란했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중심 도시로서 당시 대규모 궁전들과 성당들이 도시 중심부에 촘촘히 분포해있다. 하지만 중심부를 조금만 벗어나도 중세의 낭만은 사라진다.
1차대전 직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공화국이 되었고, 이 때부터 좌파 정권이 집권한 “Red Vienna”의 시대가 된다. 러시아에서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난지 얼마안되어 시작된“Red Vienna” 시대 때에는 사회주의 공동주택으로 유명한 게마인데바우텐(Gemeindebauten)이 연간 30,000 세대씩 공급되었다. 이는 빈에 새로운 모습을 불어 넣는 역할을 한다. 기존에는 전제적인 왕권에 의하여 그 권위를 상징하는 궁전 등을 짓는데 국가의 노력이 들어갔다고 하면, 이제는 국민들을 위한 주택을 공급하는데게 국가의 노력이 집결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동안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살아야만 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특히 빈의 공동주택은 기존의 도시 조직을 살리고 기존 건물 높이와 조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아파트가 기존의 도시 모습과 동떨어지게 보이는 이질감이 비교적 적게 느껴진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 주거는 대부분 장식이 없고 기능에 충실하게 지어진 건물들이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흔히 유럽 도시에서 기대하게 되는 고전적인 장식과 조각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인데, 이는 당시 모더니즘의 영향이었다. 1920년대는 건축역사에 있어서 모더니즘이 건축 전반에 거쳐 적용되기 시작한 시기였고, 이는 건축의 예술성 보다는 기능성에 충실한 이념이었다. 특히 “장식은 죄악”이다라고 역설한 모더니즘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아돌프 로스 (Adolf Loos)가 빈에 1909년에 설계한 Looshaus는 게마인데바우텐의 모델이 되기도 하였다. 이 건물은 빈의 Inner Ring에 위치한 미하엘 광장에 면하고 있으며 호프부르크 황궁 맞은편에 위치해 있다. 호프부르크는 13세기부터 수도 없이 많은 증축과 개축, 또한 장식의 덧붙임을 통해 지속되어 오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상징과도 같은 건물이었다. 헌데 이러한 건물 맞은편에 아무런 장식이 없고 기능에만 충실한 건물을 설계했으니, 당시 아돌프 로스가 받았을 손가락질은 감히 짐작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이 로스하우스는 오스트리아로서는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바뀌는 전환점이, 건축에서는 고전에서 근대건축으로 넘어가는 시발점이 되는 아주 중요한 디딤돌이 된 것이다.
<근대에서 현대로; University of Vienna Library & Learning Center>
오스트리아의 빈이 근대 건축의 발상지나 중심지는 아니었지만, 앞서 언급하였듯이, 근대 건축에 있어서 중요한 마일드 스톤을 찍은 도시였다. 모더니즘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막시즘의 영향을 받은 것이 사실이며, 때문에 좌파 정권이 빈을 장악하였을 당시 진행하였던 공공 주택 프로젝트에서 모더니즘을 근간으로하는 공공 주택들이 많이 건설된 것이 이상할 것이 없다. 결국 우리가 빈의 모습을 떠 올릴 때 삭막한 무장식의 콘크리트 건물들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빈은 이미 근대 건축에서는 중요한 캔버스가 되었다. 이러한 도시에 이제는 근대를 넘어 현대의 건축을 대변하는 자하 하디드 (Zaha Hadid)의 건물이 들어섰다. 바로 빈 경제대학의 도서관 및 강의동이다. 빈 경제대학은 구도심에서 강 건너편에 있기 때문에 사실 관광객이 가보기에는 다소 거리가 있는 편이다. 하지만 <비포선라이즈>에서 처럼 회전관람차를 타보고 싶다면 빈 경제대학 근처에 갈 수 밖에 없으니 한번쯤 둘러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자하 하디드는 우리나라에서는 동대문플라자 (DDP)로 유명하다. 건축계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거쳐서 많은 논란거리를 만들어 냈는데, 이는 대부분의 자하 하디드의 프로젝트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빈 경제대학 도서관 및 강의동 건물 역시 마찬 가지이다. 지어진지 2년이 다 되어가지만 최근까지도 건물에서 하자가 발생해서 건축가가 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를 접어두고 일단 건물의 공간만을 본다고 하면 아마 방문객으로서는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거대한 공간은 마치 스타워즈에 나오는 임페리얼 셔틀이 하나 있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다. 자하 하디드는 유동적인 공간을 구성하는 것으로 유명한 건축가이다. 모더니즘이 바닥, 벽, 천정 등의 명확한 구분을 통해서 공간을 구성하는 방식이었다고 하면, 자하 하디드는 이 요소들의 경계를 허물어, 바닥이 벽으로 변환하고 또 벽이 천정으로 변환되는 등의 새로운 방식으로 공간을 구성한다. 이는 서울의 DDP에서도 잘 나타나는데, DDP 공원의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외부 공원에 있다가 어느 순간에는 건물 내부에 들어와 있고, 또 어떨 때는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만큼 내.외부의 경계를 구분하는 벽을 모호하게 사용하고 동선의 흐름을 따라 공간을 구성하기 때문에 그러한 경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빈 경제대학 도서관 및 강의동에서도 나타난다. 램프를 따라 걷다보면 자신이 어느 층에 와 있는지 명확하지 않을 때가 있으며, 이 동선의 과정 중에 다른 공간을 따라 이동하는 학생들을 목격하게 된다. 그 만큼 공간간의 뒤섞임이 풍부해서 공간간에 시각적인 연계성을 높여주고 있다. 이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학교의 도서관이나 강의동과는 거리가 먼 공간이다. 많은 학교의 강의실들이 복도와 교실만으로 구성이 되어있어, 복도를 이동할 때 같은 복도를 이용하는 학생들과 어색한 부딪힘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뒤섞임’의 전부이다. 결국 매주 같은 수업이 반복되고 또 같은 학생들과만 마주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자하 하디드가 생각하는 학교의 강의동은 그러한 것이 아니다. 불특정 다수와 마주칠 수 있어야 하고 그 마주침 역시 랜덤해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전 누군가에게 한 IT기업이 내부 공사관계로 모든 프린팅과 복사 등등을 한 층에 몰아 넣었더니, 그곳에서 평소에는 잘 마주칠 일 없는 각 층의 직원들이 교류를 하게 되면서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다. 학교의 공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규정된 공간 안에서 예상되는 행동 패턴이 벌어지는 곳이 아니라, 조금은 덜 규정되고, 행동의 패턴 역시 예측 불허일 때 더 좋은 학교의 분위기가 만들어 질 수 있을 것이다. 자하 하디드는 이를 빈 경제대학 도서관 및 강의동에서 구현하고 있다.
최근의 건축에서는 ‘정의되지 않은’ 공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복도면 복도, 강의실이면 강의실이라고 하는 용도가 명확히 구분된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이동의 경로로 이용도 되지만, 또 경우에 따라서는 학생들 간의 미팅의 공간으로 이용도 되고 할 수 있는 모호한 공간들이 더 이용자들의 창의성을 높이고 건물과 이용자들의 긴밀성을 높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건물을 부동산의 가치로 보지 않고 인간의 경험을 유발 혹은 확장시키는 공간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본다고 하면, 우리가 조금은 더 여유있게 공간을 구성하는데에 너그러워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