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NICE (News & Information for Chemical Engineers), No. 179

NICE (News & Information for Chemical Engineers), No. 179

영화

임동우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도시는 미국의 시애틀이다. 시애틀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생각한다면, 열에 아홉은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제일 먼저 떠올릴 것이다. 개봉한지 20년이 지났음에도 이 영화를 가장 먼저 떠올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물론 제목에 “시애틀”이 들어가 있기도 하지만, 맥 라이언의 풋풋했던 모습에 매료되었던 관객이 그 만큼 많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사실, 이 영화의 마지막 엔딩이었던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의 운명적인 만남은 뉴욕의 앰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시애틀과 함께 소개하고자 하는 영화는 이제는 탕웨이의 남편으로 더 유명한 김태용 감독의 <만추>이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로 상업영화 데뷔를 한 김태용 감독은 두 번째 장편영화 <가족의 탄생>으로 충무로에서 연타석 안타를 쳐낸다. 개인적으로도 <가족의 탄생>은 김태용 감독의 영화를 앞으로 계속 챙겨 봐야 하겠다라고 생각하게 해 준 영화이다. 이 영화가 흥행대작은 아니었지만, 평단의 호평을 받은 이유가 감독의 세밀한 연출과 인물들 간의 심리를 잘 묘사했기 때문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이러한 세밀한 묘사는 감독이 두 남여의 심리가 타이트하게 클로즈업 되어 묘사되어야 하는 <만추>에서 더 빛을 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만추>의 남자주인공인 현빈이 군대가기 직전 찍었던 <만추>와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두편의 영화를 선택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두 편 모두 흥행은 하지 못했지만, 현빈의 연기가 돋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시 <만추>로 돌아가자면, 영화 속 내내 표현되는 우중충하고 짙은 안개가 낀 분위기가 시애틀을 소개하기에 더 적합한 영화가 아닐까 하여, 모두가 예상하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보다는 <만추>와 함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더 좋을 듯 싶었다. <만추>는 많은 사람이 잘 알고 있듯이 60년대의 원작 <만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원작은 서울이 배경이지만, 새로운 <만추>는 시애틀이 배경이다. 이것은 아마도 김태용 감독이 영화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약간의 판타지와 동시에 “밝지 않은” 분위기를 연출하기에, 서울이나 국내의 여타 도시보다는, 여름을 제외하고는 늘 날씨가 우중충한 외국의 도시가 더 적합했다고 판단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만희 감독의 원작 <만추>를 보지는 못했지만 이 작품은 영상미가 뛰어난 영화로 유명하다고 하다. 그리고 김태용 감독은 원작의 영상미를 의식했는지는 모르지만, 전작들에 비하여 <만추>에서 훨씬 세련된 영상미를 연출하고 있고, 이는 시애틀의 안개 낀, 혹은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sprinkling 날씨가 이를 극대화 시켜준 것 같다. 

사실 시애틀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에 비해서는 상당히 작은 도시이다. 인구 65만명의 도시로 우리나라로 치면 전주시 정도에 크지 않은 도시이고,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오레곤 주의 포틀랜드와 경쟁을 하는 구도니 시애틀이 알려진 것에 비해서는 작고, 또 한편으로는 도시의 규모에 비해서 도시 브랜딩을 잘 한 것일 수도 있다. 최근에는 마이크로소프트 본사가 시애틀 인근의 도시에 있고, Amazon의 헤드쿼터가 시애틀 한복판에 있기 때문에 IT에 익숙한 젊은 층에게는 더욱 친숙해진 도시가 되지 않았나 싶다. 실제로 MS윈도우 바탕화면에는 시애틀의 상징인 Space Needle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며, 늘 샌프란시스코 항공사진을 갖고 시연을 하는 Google Map과는 달리, MS는 시애틀 항공사진으로 Bing Map을 시연한다. (MS의 검색엔진이 Bing이다) 그리고 아마존에서도 드론으로 배송을 한다고 했을때, 이를 처음 시연하고자 했던 도시가 그들이 위치해 있는 시애틀이었다. IT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러한 뉴스를 접하며 시애틀을 익숙하게 생각하겠지만, 설사 IT에 친숙하지 않은 사람이어도 시애틀하면, 스타벅스 1호점이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을 듯 하다. 또 미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s Anatomy>의 배경이 시애틀이라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시애틀에서 단 한번도 촬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글로벌 IT기업들이나 스타벅스, 혹은 드라마보다 이미 먼저 시애틀을 국제 무대에 등장시킨 것은 1962년 있었던 시애틀 국제 엑스포였다. 우리의 남산타워와 비슷하여 늘 친숙하게 느껴지는 시애틀의 Space Needle이 이 엑스포를 기념하여 세워신 것이고, 우리나라 역시 이 엑스포에 파빌리온 하나를 지어 참여하였다. 당시에 약 천 만명의 관람객이 방문을 했다고 하니 대단한 흥행을 했음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반세기 후에 열린 2012년 여수 국제박람회보다도 많은 수치이다) <만추>에서도 순간순간 등장하는 고가차도 처럼 보이는 모노레일이 있는데, 이것이 1962년 엑스포때 처음 만들어진 모노레일이다. 아무쪼록 이때의 엑스포 이후 시애틀은 다양한 산업들이 발전을 하며, 많은 이주민들을 도시로 끌어들였다.

실제로 보스톤에 오래 살다가 시애틀로 이주한 사람이 말하길, 시애틀 인구의 절반이상은 1990년대 이후에 이주해온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대부분이 직장때문에 시애틀로 왔기 때문에, 그곳에서의 인사는 보스톤과는 다른 것을 느꼈다고 한다. 보스톤에서는 워낙 학교때문에 보스톤으로 이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람들이 “학교 어디 다녀?” 혹은 “학교 어디 나왔어?”라고 물어보는 반면, 시애틀에서는 “어느 직종에서 일해?” 혹은 “어떤 회사 다녀?”하고 많이 묻는다는 것. 그 만큼 시애틀은 이주의 역사가 짧기도 하고, 또 많은 새로운 산업들이 이주민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미국 국내인들 뿐 아니라, 외국인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시애틀에서 가까운 동아시아 지역출신의 이주민들을 오래전부터 시애틀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이는 시애틀의 공항에만 가봐도 느낄 수 있다. 일본말과 한국말 안내가 영어와 함께 방송된다. 더 재미난 사실은, 이들 아시아 국가의 이주민들이 많다 보니, 대부분 다른 도시에서는 차이나타운으로 명명되는 지역이 시애틀에서는 International District라고 명명된다. 여전히 중국인들이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다른 아시아 민족들도 시애틀에 많이 정착하고 있다는 사실의 반증이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일본 야구의 이치로 선수가 처음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때 시애틀 매리너스로 간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LA다저스에서 박찬호나 류현진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것도 그 만큼 그 지역에서의 한인이 티켓파워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이러한 면 때문에, <만추>의 배경이 시애틀인 것이 어색하지 않다. 원작 <만추>와는 달리 김태용 감독의 <만추>에서는 서로 다른 국적의 남여를 등장시킴으로서 원작보다 남여사이에 하나의 간극을 더 추가하였다. 원작과 리메이크작 모두 (그다지 사회 모범 인간형은 아니지만) 밖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남자와 (순간의 범죄를 저지르기는 했으나 모범 인간형에 가까운) 여자 죄수를 등장시킴으로서 그 둘이 필연적으로 가질 수 밖에 없는 간극을 처음부터 설정해 놓고 있는데, 김태용 감독은 여기에 국적이 다른 (따라서 서로에게는 늘 이방인이 될 수 밖에 없는) 간극을 추가하였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시애틀은 이 두개의 다른 국적의 아시아인이 등장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도시이며, 여기에 시애틀의 기후는 영화의 판타지적인 영상미를 극대화해주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배경이 된다.

<만추>의 훈 (현빈 분)과 애나 (탕웨이 분)은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즐기는데 그 중 역시 제일 유명한 곳은 시애틀의 Pike Place Market이라는 곳이다. 문 닫은 시장의 이곳 저곳을 누비며 뛰어다니는 모습은 이 영화가 보여주는 가장 함축적인 영상인 것 같다. 복잡한 시장의 일상이 모두 사라진 시간에 세상에서는 이방인일 수 밖에 없는 두 남여가 짧은 행복한 순간을 보내는 장면이 이 공간이다. 여기는 시애틀을 관광이건 비지니스건 무슨 목적에서건 다녀간 사람들은 반드시 들렸을 법한 시애틀의 명소이다. 이곳은Elliot Bay 를 바라보고 형성된 시장같은 곳인데, 과일, 빵, 수산물 등 그야말로 우리네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있다. 최근에는 관광객들이 많아져서 그들을 상대로 하는 아이스크림 가게나 쵸코렛 가게 등도 많이 생겼다. (시애틀에서 보이는 바다는 태평양이 아니라 Puget 해협이다. 시애틀에서 실제 태평양을 보려면 차로 몇 시간은 가야한다) 이곳은 소비자가 생산자를 직접 만나게 한다 (Meet the Producer)라는 구호아래 시장을 재생 시키고 꾸준히 생산자를 시장에 유치함으로서 현재에도 현지인들에게 사랑받는 시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보스톤의 Quincy Market역시 수산시장으로 유명했지만, 이제는 그 기능은 사라지고 관광지로서의 구경거리로 바뀐 것을 생각하면, 그래도 시애틀의 Pike Place Market은 여전히 그 시장의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더 흥미롭다. 그리고 스타벅스 커피를 마셔본 사람들은 이미 예상을 했겠지만, 스타벅스 드립커피 중 Pike Place라는 커피가 있는데, 이는 이곳 마켓을 의미하며, 바로 이곳이 스타벅스 1호점이 있는 지역이다. 사실 스타벅스 1호점이라고 해서 70년대의 분위기와 인테리어를 기대했지만, 그런 모습은 아니고 여타 스타벅스와 대동소이하다. (이곳은 사실 제일 처음 스타벅스 카페가 위치했던 곳은 아니고, 처음 위치했던 곳에서 이곳으로 70년대에 이전한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Pike Place Market 주변에는 힙한 Bar나 레스토랑들이 많아서 단순히 관광객들을 위한 지역이 아니라, 로컬들이 많이 찾는 지역이기도 하다. 그 중 유명한 것이 Gum Wall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벽에 온갖 씹다 뱉은 껍들을 붙여 놓은 (약 수 천만개는 있을 것 같은) “껌벽”이 있는데, 그 옆에 Pike Brewing Company라는 맥주집은 시애틀의 로컬맥주를 맛보기에 안성맞춤이다.

새로운 개념의 도서관 Seattle Public Library

일반적인 관광객들에게 시애틀의 Pike Place Market을 제외한 관광명소는 아마도 Space Needle 이겠지만, 아무래도 건축을 하는 사람들에게 최근 가장 주목 받고 있는 명소는 Seattle Public Library (SPL)이다. 이는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현대 건축가라고 불리우는 Rem Koolhaas (렘 콜하스)가 운영하는 네덜란드의 OMA라는 사무소에서 설계한 도서관이다. 아마도 건축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렘콜하스라는 이름이 낯설지만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대학교 박물관과 리움을 마스터플랜 하고 그 중 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를 설계한 건축가로 유명하다. 렘콜하스는 단순히 작품이 멋져서 유명한 것이 아니라, 디자인 과정에서 프로그램을 새롭게 해석하고 이를 구축하는 과정해서 새로운 공간들을 구성하는 등, 기존의 설계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설계하기 때문에 현재 최고의 현대건축가로서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SPL이 시애틀의 명소가 된 이유는 단순히 건축적으로 의미가 있고 훌륭해서가 아니다. 시애틀 시민들이 이 도서관을 또 다른 공원처럼 좋아하고 잘 이용하기 때문이다. 이 도서관의 로비에 들어서면 우선 본인이 도서관에 들어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실내 공원에 들어와 있는 것인지 잠시 헷갈리게 된다. 이는 도서관이라는 것이, 책을 수장하고 대여/반납하는 전통적인 기능을 제공하는 공간에서, 공공공간으로서 정보검색과 휴식, 만남 등의 기능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변화해 나가고 있다고 분석하고 이를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을 제안한 건축가의 역할이 컸다. 실제로 누구나 쉽게 드나들 수 있고, 휴게할 수 있는 SPL 도서관의 로비 공간을 렘콜하스는 Living Room 이라고 명명하고 설계하였는데, 이를 보면 건축가가 이 공간이 시민들에게 만남, 휴게, 시간때우기 등의 공간이 되기를 원한 것을 유추해볼 수 있다. SPL의 장점 중에 하나는, 누구나 아무런 제제를 받지 않고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인데, 따라서 많은 구직자들이 이곳의 시설을 거의 하루 종일 이용하며, 도서관에서도 이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도와주기도 한다. 또한 친구와 만남의 장소로 이용되기도 하며, 직장인들이 점심시간 때 잠깐 들러 휴식을 취하는 공간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이러한 친근감 있는 도서관을 만드는 것이 SPL에서는 설계단계에서부터 잘 반영되어있다. 책을 수장하는 시설을 가능한한 한 공간으로 몰아넣고 나머지 공간들을 열린 공간으로 계획하여, 그곳에서 독서, 웹서핑, 자료검색, 강연 등등 각종 액티비티가 일어날 수 있도록 하였다. 따라서 시애틀의 시민들은 SPL을 전통적인 도서관을 이용한다고 생각하고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도시생활 공간 중에 하나로 활용하고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면을 봤을 때, 우리도 시립도서관, 구립도서관 등 많은 도서관 시설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 공간들이 일상의 공간이라기 보다는 (각종 고시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을 제외하고는) 책 대여와 반납이라는 특정한 목적이 있을 때만 이용하는 공간이 되는 것이 아쉽다. 최근 들어 몇몇 기업이SPL과 유사한 형식의 도서관 공간을 만들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인상적이라 생각한다. (물론 여전히, 공공에서 제공해야할 공간을 사기업에서 제공하고 있다는 점은 안타깝다)

다시 SPL 얘기로 돌아가자면, 이 건물은 밖에서 봐도 한 눈에 특이하다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건물이 직육면체로 반듯한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삐뚤빼뚤”하게 설계되었는데, 이는 내부 공간을 구성하고 그것이 외부형태에 반영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모습이다. SPL은 반듯반듯한 주변의 오피스 건물 사이에서 새로운 형태로 자리함으로서 도시 공간에서 새로운 효과를 제공한다. 이는 뉴욕의 직사각형 건물 사이에서 구겐하임 뮤지움을 원형의 형태로 설계한 미국 모더니즘의 아버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아이디어와 유사하다. 아직 한국에서는 많은 건축 논리가, 공간의 효율과 공사비로 규정되다 보니, 한국 사람들이 이러한 건물을 보면 “이상하다”라고 느낄 수 있겠지만, 언젠가는 한국도 효율과 비용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체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따지게 되는 날이 곧 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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