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NICE (News & Information for Chemical Engineers), No. 178

NICE (News & Information for Chemical Engineers), No. 178

영화

임동우

영화와 건축은 닮은 점이 매우 많다. 좋은 작품일 수록 그 시대의 문화를 충분히 담아내고 있다는 것 뿐만 아니라, 제한된 조건 안에서 수 많은 작은 요소들이 모여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 나아가는 과정도 닮아있다. 영화 감독이 작가, 배우, 조감독, PD, 촬영감독, 조명감독 등등 수 많은 전문가들과의 협력을 통해 하나의 영화를 만들어 내듯이, 건축가도 조경설계, 구조설계, 조명디자인, 인테리어디자인, 시각디자인 등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력함으로서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 나간다. 그리고 그 완성된 작업들이 관객 혹은 대중에 의해 평가 받는 것 역시 닮아있다. 이러한 분야의 유사성을 떠나, 영화의 배경을 통해 건축적인 얘기를 풀어나갈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예를 들어, 영화 <큐브> (나탈리 빈센조, 1997)의 배경이 되는 정육면체 방의 세트는 건축 공간적으로도 매우 참신했으며, 이는 건축적인 상상력이 영화의 공간으로 나타나기도 한 것이지만, 이 영화로 인해 또 많은 건축인들이 이 영화적 상상력에 영향을 받기도 하였다. 이는 건축의 공간이 확장되어 나타나는 도시의 공간에서 역시 마찬가지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의 하나인 <시티 오브 갓>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2002) 는 영화를 보는 내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빈민도시촌을 매우 잘 활용하며 영화의 몰입도를 높인다. 이는 감독이 건축과 출신이라는 사실이 도시 공간 구석구석을 영화의 이야기와 함께 잘 녹여낼 수 있었던 이유일 수도 있었겠지만, 기본적으로 연극의 3대 요소에 무대가 들어가듯, 영화 속 건축과 도시는 영화를 구성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일 것이다. <영화속의 도시, 그리고 도시 속의 건축>에서는 영화의 배경이 되는 도시를 소개하고, 그 도시의 대표적인 건축을 소개하고자 한다.

<The Departed: 미국의

보스톤은 사실 영화의 배경으로 각광받는 도시는 아니다. 뉴욕이나 시카고처럼 미국의 대규모 도시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를 담기에는 너무 작고, 또 미국의 한적한 도시들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를 담기에는 너무 발달되어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보스톤이 영화 배경으로서 갖는 메리트는 아무래도 (실제로 행정구역 상으로는 보스톤이 아니라 케임브릿지에 있는) 하바드 대학과 MIT 대학과 같은 캠퍼스 이야기가 중심이 될 때 일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러브스토리>를 비롯해서 <굿윌헌팅>, <소셜네트워크>, <21> 등의 영화에 이들 캠퍼스가 곧 잘 묘사되어있다. 그러나 캠퍼스에 국한되어 있는 이들 영화들과는 다르게, 몇몇 영화들은 보스톤의 정취와 풍경을 느끼게끔 해주는 영화들이 있는데, 그 중 이번에 소개하고 싶은 영화는 <디파티드>이다.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디파티드>는 <무간도>의 리메이크 작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을 것이다. 물론 갱스터 영화로 유명한 마틴 스코세이지가 감독하고 브래드 피트가 제작을 함으로서 그 유명세에 힘을 얻은 것이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마틴 스코세이지의 색깔이 잘 입혀진 영화라는 생각도 안 들고, 영화 후반부로 갈 수록 이야기의 짜임새가 엉성해진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2007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편집상 등 4개 부분을 수상했다고 하니, 거장 감독에 대한 예우였던, 제작자의 영향력이었던, 아니면 필자의 영화에 대한 부족한 식견이건 간에 아무튼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영화임에는 틀림없는 듯 하다.

감독이 홍콩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리메이크 함에 있어서 왜 보스톤을 배경으로 선택했는지 명확하지는 않다. 물론 2006년 부터 시행된 (보스톤이 속해있는) 매사츄세츠주의 영화 산업에 대한 세제혜택이 이후 많은 보스톤 배경의 영화를 생산해 냈고, <디파티드> 역시 그러한 현실적인 배경이 도시 선택의 이유였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영화 전개의 바탕이 되는 아일랜드계 이민자들과 그들로 구성된 갱들의 이야기는 <무간도>를 미국화 시키기에 가장 적절한 소재였을 것 같고, 이를 표현하기에는 보스톤만큼 좋은 도시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보스톤은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많아, 아일랜드 출신 성자인 성패트릭 데이 (Saint Patrick's Day)를 가장 요란스럽게 (아마도 아일랜드보다도) 보내는 도시 중의 하나이다.

유명한 학교들이 많고, 전통적으로 민주당의 텃밭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보스톤은 굉장히 개방적이고 인종차별이 적은 곳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인종차별이 겉으로 드러나던 1970년대까지만해도 보스톤이 미국에서 가장 인종차별이 심한 도시로 악명을 떨쳤다. 이는 <디파티드>의 출연자들이 대부분 백인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 경찰이건 갱이건 공무원이건 할 것 없이 대부분이 백인인 도시였고, 이는 영화 초반 빌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이 경찰학교 흑인 동기에게 “넌 졸업하고 대책없을거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에서도 대략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러한 백인중심 문화는 보스토니안 (Bostonian)의 자부심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뉴욕에서는 열흘만 살아도 다들 스스로를 뉴요커라 칭하고 다니지만, 보스톤에서는 10년을 살아도 보스토니안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만큼 뿌리가 없으면 보스톤'인'이 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 보스톤은 미국의 정신을 상징한다. 단순히 '정치1번지'여서가 아니라, 영국과의 독립전쟁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고, 미국의 첫 대학, 첫 도서관, 첫 공립학교가 있는 등 미국의 지성을 상징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 자부심 덕분인지, 보스톤에 주청사를 두고 있는 매사츄세츠주의 자동차 번호판에는 'The Spirit of America'가 적혀있다) 이 주청사는 <디파티드>에서도 콜린 (맷 데이먼 분)이 새로 이사한 아파트에서 금박의 돔이 있는 건물을 보며 흐뭇해 하는데, 바로 그 건물이다. 콜린의 '성공'과 '야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인데, 그 아파트가 위치해 있는 동네가 비컨힐(Beacon Hill)이라는 동네이다. 이 지역은 보스톤의 가장 역사적인 지역이기도 하다. 바닷가에 있는 보스톤은 대부분이 바다를 메꾸어 만든 도시이기 때문에, 실제로 보스톤에서 원래 '땅'이었던 지역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 중 비컨힐이 보스톤에 도시가 형성될 때 부터 있었던 역사적인 지역이었고, 오래전부터 '가문'들이 살던 곳이다. 현재도 많은 정치인들과 재력가들이 사는 동네이며 가장 비싼 집들이 있는 동네 중 하나이다. 재미난 것은 비컨힐의 땅을 깎아 그 흙으로 메꾼 지역이 백베이(Back Bay)라는 지역으로 보스톤에서 비컨힐에 견줄만큼 유명하기도 하며 비싸기도 한 지역이다. 아마도 관광객이라고 하면 백베이의 정취를 더 좋아할런지도 모른다. 아무쪼록 이제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보스톤에서 '비컨힐'에 산다고하면 그것이 의미하는 상징성이 있는게 사실이다.

비컨힐이 보스톤의 역사와 전통을 대변하는 동네라고 하면, 보스톤의 새로움을 대변하는 동네는 사우스 보스톤 (South Boston) 지역이다. <디파티드>에서 갱단의 두목인 코스텔로 (잭 니콜슨 분)이 활동하던 지역이 바로 이 지역이다. 영화를 보면서 예상을 했겠지만, 불과 10여년전만 해도 이 지역은 그다지 안전한 동네는 아니었다. 이 지역 역시 다른 대부분의 보스톤 지역과 마찬가지로 간척사업으로 새로 만든 땅이다. 그 동안은 별다른 주목을 못받았지만 근래에 보스톤 컨벤션센터를 대규모로 유치하고 보스톤 시에서도 이노베이션 지역(Innovation District)라고 설정하여 많은 새로운 기업과 벤처기업들을 유치하면서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 지역이다. 오늘 소개하고 싶은 보스톤의 건축이 바로 이 지역에 위치해 있다.

ICA by Diller Scofidio + Renfro

2006년에 완공된 ICA (Institute of Contemporary Art)는 보스톤 컨벤션센터와 함께 이 지역 개발을 위한 촉매제로 사용되고 있다. ICA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는 무언가 싶을 수 있는데, 현대미술관이다. 이는 처음에 Boston Museum of Modern Art라는 이름으로 1936년에 시작되었다가, 중간에 한번 Institute of Modern Art라고 명칭을 바꾸고, 다시 현재의 이름인 ICA로 개명하였다. modern을 버리고 contemporary를 선택하는 이름의 변천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ICA는 '새로움'에 매우 개방적이다.

ICA는 역사적으로 건축과 매우 긴밀하게 엮여 있다. Boston Museum of Modern Art로 처음 시작했을 때의 대표가 20대의 젊은 건축가 Nathaniel Saltonstall 이었으며, 근대건축역사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건축가 르 꼬르뷔제 (Le Corbusier)가 미국에서 처음 전시를 한 곳이 ICA였다. 그리고 지금 뮤지움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썼던 옛 건물은 현재 보스톤 건축대학 (Boston Architectural College)에서 사용하고 있다. 건축과 이렇게 긴밀한 관계로 엮여 있던 ICA가 새로운 건축을 위해 어떠한 건축가를 선정할 것인가는 건축계뿐만 아니라 미술계에서도 뜨거운 관심사였고, 결국 당시에 미국의 현대건축을 이끌어 나아갈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었던 딜러-스코피디오 (Diller Scofidio, Elizabeth Diller와 Ricardo Scofidio가 운영하는 뉴욕 기반 건축설계사무소, 현재는 Charles Renfro가 파트너로 합류해서 Diller Scofidio+Renfro 라는 이름으로 활동) 의 작품을 선택했다. 이것이 파격적이었던 이유는 당시 딜러-스코피디오는 2002년 스위스 엑스포에서 미국 파빌리온 (임시구조물)을 설계한 것 이외에 아무런 현실화된 건축작업이 없던 건축가 그룹이었다. 하지만 앞서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는 ICA를 이야기 한 것 처럼, ICA는 파격적으로 이 건축가 그룹을 선택했고, 결과적으로 딜러-스코피디오는 훌륭한 작품을 보여주었다. (이후 딜러-스코피디오는 뉴욕의 하이라인과 링컨센터 레노베이션 등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를 하면서 현재 미국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건축가 그룹으로 성장했다.)

ICA가 건축적으로 각광받는 이유는 바닷가에 위치한 뮤지움의 장점을 충분히 살리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많은 경우, 뮤지움은 단순히 예술 작품의 전시만 잘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뮤지움은 그 기능이 갖는 공공성 때문에 필연적으로 방문객 이외의 대중도 생각해야 한다. ICA에서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계단형 무대를 만들어 뮤지움으로서의 공공성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수변공간의 다양한 활용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곳은 바다를 바라보며 휴식하는 공간으로도 사용되지만, 결혼식 리셉션이나 파티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기도 한다. 결국 뮤지움이 단순히 예술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으로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공공공간을 제공하고 액티비티를 활성화하는 역할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전시공간을 넘어선 그 무엇을 보여주고자 하는 딜러-스코피디오의 노력은 ICA의 내부에서도 실현되고 있다. 전시공간을 돌아다니다가 무심결에 마주치게 되는 전망공간은 방문객으로 하여금 예술작품 뿐만 아니라, 보스톤의 경관을 '감상'하게끔 해준다. 이는 굳이 고층건물의 전망대가 아니어도, 충분히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 생각된다. 또한, 앞서 언급한 것 처럼, 거의 맨땅이나 다름 없던 대지 위에 뮤지움을 설계함에 있어서, 그 뮤지움이 도시 내에서 하나의 장소성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지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만약 ICA가 단순히 전시공간만 훌륭하고 전시내용만 좋은 뮤지움이었다고 하면 많은 보스톤 시민들과 보스톤을 방문하는 방문객들이 그렇게 많이 방문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ICA 위치가 다른 관광코스와는 동떨어져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ICA가 사랑받는 이유는, ICA를 방문하면 보스톤의 또 다른 풍경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ICA는 그렇게 큰 뮤지움이 아니기 때문에 뉴욕의 MoMA (Museum of Modern Art)와 같은 다양한 예술작품을 기대하고 간다고 하면 조금은 실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ICA에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보스톤의 풍경만으로도 꼭 건축학도가 아니어도 방문을 권하고 싶을 정도다.

사담이지만, 딜러-스코피디오는 이 작품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함으로서 이후 매우 중요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다. 뉴욕을 베이스로 활동하는 관계로 뉴욕의 굵직 굵직한 프로젝트에는 항상 관여를 하고 있다. 또 하나 매우 성공적으로 진행한 프로젝트가 (요즘 서울고가차로때문에 한국에서도 많이 알려진) 뉴욕 하이라인 프로젝트가 있고, 현재는 뉴욕 MoMA의 새로운 건물을 설계하는 과정에도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마 조만간 한국에서도 그들의 작품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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