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도시와 국토개발을 위한 제언
임동우
북한의 변화
북한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다. 연초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시작하여 4월 남북정상회담이나 6월 북미정상회담 등 2018년의 절반이 조금 지났을 뿐인데, 이미 북한의 변화가 다양한 태널로 감지되고 있다. 또한 다가오는 가을에는 평양에서 다시 한 번 남북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어김없이 북한과 관련한 연구와 행사가 대대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겠지만, 늘 분위기에 따라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위태로웠던 남북관계를 이번만큼은 조금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차분히 바라볼 수 있는 기회로 삼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한국에서의 북한 문제나 연구는 어쩔 수 없이 ‘통일’이라는 전제조건을 걸어두는 경우가 많다. 이는 국민의 정서를 반영한 것일 수도 있고, 또 여러 정부기관에서 연구비를 받는 연구자들 입장에서 피치 못한 선택일 수도 있다. 그 내면의 이유가 무엇이든 언제나 ‘통일을 대비한’ 혹은 ‘통일시대’ 등으로 시작되는 것이 북한 연구의 첫걸음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정부에서조차 ‘통일’보다는 ‘교류’라는 차원에서 남북관계에 접근한다. 어찌 보면 지금부터 더 합리적인 북한의 도시개발 목은 국토개발을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통일시대’를 대비한 북한 국토개발은 (우리 쪽에서만 강조하는 방식의) 통일이 되기 전까지는 큰 의미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통일이 전제조건이 되지 않았을 때, 북한만의 도시개발과 국토개발은 어떤 방향성을 가질 수 있을까. 아마 그제안의 시작은 북한 도시 구성의 특징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 도시의 특징
북한의 도시는 이미 많은 연구에서도 나타나듯 소수의 대도시가 아니라 다수의 중소도시로 구성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대도시를 지양한 사회주의 국가들의 공통된 특징이기도 하다. 북한의 수도 평양은 300만 명이 채 안 되는 인구가 거주하며 북한 인구의 약 10%가량만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북한에서는 매우 큰 대도시이다. 제2, 3의 도시인 함흥과 청진에는 각각 60~70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며, 약 6%의 인구를 담당하고 있다. 즉, 상위 3개의 도시를 다 합쳐도 북한 인구의 16%가량에 지나지 않으며, 나머지 84%의 인구는 다른 중소도시와 농촌에 비교적 고르게 분포하고 있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이에 대해 북한이 아직 2, 3차 산업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여 도시화가 충분히 진행되지 못한 것으로 인식해왔다. 하지만 실제로 북한을 비롯한 많은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는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방식을 동원하면서까지 하나의 도시가 대도시화되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 물론 북한을 ‘거주의 자유’나 ‘이동의 자유’가 제한되는 억압적인 사회로 부각시키고 싶은 것이 정치적인 관점의 판단이겠지만, 이는 도시 계획의 제한요소 중 하나에 불과한 것이다. 즉 우리가 용도 지구를 두어 개인이 원하는 대로 아무 시설이나 짓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과 같은 논리인 것이다. ‘계획’과 ‘자유’는 어느 지점에서는 상충할 수밖에 없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대도시를 지양하는 북한의 관점은 도농복합도시를 계획하는 것과도 연관된다. 북한의 도시는 도시영역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사회주의 국가에서의 농촌은 이념의 기초가 되는 공간이자 영역이다. 산업화 초기 공장이 발달한 도시의 노동력 제공을 위하여 농촌의 노동력이 흡수당하였고,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사회의 기반인 농촌을 위협하는 도시, 더 자세히는 대도시를 ‘악’의 존재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도시와 농촌의 격차를 줄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였고, 북한에서는 이를 위하여 도시라는 행정구역이더라도 농촌영역이 함께 속해 있다. 예를 들어 수도 평양은 특별시에 해당하는 도시이지만 그 안에는 ‘구역’이라는 도시영역과 ‘군’이라는 농촌영역이 함께 공존하며, 또 ‘구역’ 안에는 ‘동’이라는 작은 도시영역과 ‘리’라고 하는 작은 농촌영역이 공존한다. 농촌영역인 ‘군’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행정구역상의 구분은 평양을 단순한 도시영역만 있는 도시가 아니라 여전히 농촌을 포함한 도시로 성장할 수 있게 해주었고, 때문에 평야의 실제 도심은 그 범위가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평양의 행정구역상 면적이 2천 km2를 넘게 된 것이다. 이렇게 기본적으로 도시에 대한 인식과 계획법, 구성이 다른 북한의 도시, 혹은 국토개발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식 국토개발을 어떻게 적용할까 하는 점이 아니라, 오히려 북한 도시의 특징을 살려 북한식 국토개발 모델을 어떻게 만들어낼까 하는 점일 것이다.
북한 국토개발의 방향
앞서 언급하였듯이, 북한의 도시는 평양을 제외하고 중소형의 도시들이 국토 전반에 걸쳐 고르게 분포하고 있는 특징이 있다. 이는 북한의 국토개발계획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준다. 산업화 이후 세계의 도시 발달은 대도시 모델이 주를 이루었다. 가장 먼저 인구 500만명을 넘어선 런던을 비롯하여, 미국의 뉴욕, 일본의 도쿄, 한국의 서울 등 성공적인 도시는 모두 대도시화되었으며, 이제는 중국과 베트남의 도시들이 이 대도시 모델을 적용하며 뒤따르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직접 체험하고 있듯, 이러한 대도시 모델은 지역의 불균형을 낳고 생활환경의 격차를 만들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도시 문제에서 새롭게 중요한 화두로 인식되고 있는 자생적인 도시를 만드는 데 매우 불리한 것이 대도시 모델이라는 것이다. 대도시 자체는 경제적으로나 환경적으로 성공적인 개발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으나, 여타 중소도시는 대도시와 종속적인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 구토개발에 있어서 대전제는 현재 북한이 취하고 있는 중소도시 모델을 최대한 활용하면서도 이들이 대도시에 못지않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도시의 규모를 산정하는 기준은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기준이 적용된다. 예를 들어 독일은 2천 명, 미국은 2500명이 최소 ‘시’의 단위인데 반해, 한국과 일본은 5만 명, 그리고 중국은 10만 명을 최소 ’시’의 단위로 규정하고 있다. 이를 독시아디스(Doxiadis)의 분류법에 근거하여 살펴보면 한국과 일본의 최소도시 단위인 인구 5만 명은 약 7km2의 도시 크기를 가지며 인구 30만 명의 도시는 크기가 약 40km2이다. 독시아디스는 인구 50만 명부터 대도시로 분류하였는데, 이는 도시 연구기관인 Centre for Cities에서 영국의 중형도시를 25만 명에서 50만 명 사이의 도시로 규정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Bolton and Hildreth 2013). 즉, 북한의 국토개발에 있어서 중소형 도시를 근간으로 하는 모델을 택한다고 하면, 현재 인구 50만 명 이상의 상위 3개 도시, 즉 평양, 함흥, 청진 이외에 다른 도시들을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가 된다.
중소형 도시는 대형 도시와 비교했을 때 여러 장점들을 갖는다. Centre for Cities에서는 이를 세 가지로 정리하였는데, 첫째로는 경제성장에 가장 효율적인 도시 모델이라는 점이다. 지난 10여 년간 OECD 국가들의 경제성장을 살펴보았을 때, 약 43%의 경제성장이 대도시가 아니라 중소형 도시에서 이루어졌고, 이는 중소형 도시의 잠재성이 매우 크다는 사실의 반증이라 볼 수 있다. 둘째로는, 중소형 도시가 국토 전반에 걸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대도시가 더 큰 규모의 경제를 담당하고 있는 거은 불변의 사실이지만, 이 경우에는 경제성장이 대도시와 그 인근에 한정되는 반면, 중소형 도시의 발달은 국토 전반에 걸쳐 경제성장의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마지막으로 Centre for Cities에서는 중소형 도시의 장점을 높은 유연성(Flexibility)으로 보고 있다. 이는 새로운 산업, 정책, 교통 등을 적용시킬 수 있는 테스트베드 역할을 유연하게 수행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한다(Bolton and Hildreth 2013). 특히 이 마지막 항목은 미래의 북한 국토를 개발하는 전략을 취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고 필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전 세계가 새로운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고 있지만, 이제 대응할 수 있는 도시 모델이 현재로서는 존재하지 않는 이 시점에서 새로운 산업혁명 등을 통해 나타나는 산업과 교육, 문화, 생활, 기술 등을 적용할 수 있는 테스트베드 도시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은 북한으로서는 매우 혁명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
도시 클러스터
중소형 도시의 장점을 살리고 이를 바탕으로 하는 북한 국토의 전략적 개발을 생각한다고 하면, 도시 그리드는 북한 국토를 개발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단서가 된다. 북한은 이미 비슷한 규모의 도시와 도시영역이 대부분 자동차로 1시간 이내에 연결될 수 있는 물리적 거리를 갖고 있다. 따라서 북한 국토개발에 있어서 이들 중소형 도시군들을 엮어서 도시 그리드를 형성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발달시키고 이들의 물리적 연결성을 높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북한의 많은 국토개발 시나리오에서 나오듯 이 역시 북한을 개성-신의주의 서부연안축, 그리고 원산-나주의 동부연안축 등으로 개발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이들 축이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도시 영역들 간의 네트워크이다. 축을 기준으로 하는 국토개발은 자칫 도시 간 선형의 국토개발에 치우쳐 주요 거점 도시 위주의 국토개발로 흐를 수 있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중소형 도시군을 형성하는 방식의 국토개발은 개발의 사각지대가 생기는 것을 지양하고, 균형 있는 국토개발을 실현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도시구조가 도시 클러스터링(Clustering)이다. 즉, 현재의 도시영역을 활용하여 몇 개의 도시들이 하나의 도시군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도시 그리드를 활용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하나의 도시가 효율적인 경제구조를 갖추기 위해서는 적어도 인구 약 50만 명 내외의 규모를 갖출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그 이하는 자율적인 지역순환경제를 형성하기에 충분하지 않은 규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시 클러스터링을 통해 인구 50만 명 이상의 중형 도시 규모를 구성하고 이들이 각기 자생적인 도시군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토를 관통하는 인프라보다 도시 클러스터 내의 도시 간 연계성을 강화시킬 수 있는 인프라의 개발이 필요하다. 도로와 철도는 물론, 에너지와 물류 등 여러 인프라 시설이 도시 클러스터 단위로 개발이 되고, 이것이 확대되었을 때 국토 전반에 걸친 인프라로 발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를 통하여 각각의 도시 클러스터가 자생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북한 국토개발계획에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즉, 지역을 기만으로 하는 순환경제시스템이 도시 클러스터 단위에서 형성되고 에너지와 식량 역시 클러스터 내에서 최대한 자체적으로 생산되고 소비되는 구조를 갖출 수 있다고 하면 북한이 추구하고자 하였던 자생적인 도시모델에 근거한 국토개발전략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특히 앞서 언급하였듯이, 북한의 도시는 자생모델을 근간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도시라고 할지라도 농촌영역이 항상 포함되어 있다. 이 모델을 도시 클러스터에서 잘 활용하면 각 도시 클러스터에는 도시영역과 농촌영역이 함께 공존하며, 이를 통한 시너지, 즉 도시영역에서는 농촌의 지역 생산품이나 특산물 등을 활용한 산업화를 통해 도시 클러스터의 경제를 이끌어 나아가는 원동력을 만들 수 있다.
이러한 도시 클러스터링은 기존, 혹은 새로운 산업도시를 전략적으로 만들어 나아가는 데에도 여러 장점이 있을 적으로 보인다. 굳이 4차 산업혁명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인류의 산업은 대규모화되는 과정을 넘어 다시 다각화, 다양화되고 있다. 많은 학자들이 이미 20세기를 지배한 대량생산 모델을 더 이상 지배 모델이 될 수 없고, 오히려 매스커스터마이제이션(Masscustomization)을 기반으로 하는 소량생산(Micro-Production)이 새로운 생산 모델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설사 대량생산 모델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현재 중국이 전 세계의 생산기지 역할을 하는 것처럼 북한이 그 역할을 할 것이라 보기는 쉽지 않다. 결국 북한은 지역순환경제 모델을 바탕으로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소량생산산업을 새로운 미래전략산업으로 추구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고,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하나의 대량생산산업을 통해 도시를 대형화시키는 산업시대의 도시 모델보다는 몇 개의 중소형 산업들이 하나의 클러스터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도시 클러스터 모델이 새로운 도시개발 모델로 주목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북한을 바라보다
앞서 언급하였지만, 북한의 국토개발과 관련된 이야기는 늘 어느 정도의 허구성을 갖고 있다. 주체가 될 수 없는 기관이나 단체에서 계속해서 내놓는 이야기들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실현 가능성이 있고 진정성 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연구진들이 지속적으로 북한의 국토개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지점이 남북교류의 물꼬를 트고 이를 지속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녔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북한의 국토개발은 한국이 원하는 희망사항이 아닌, 북한이 필요로 하는 방식과 모델을 근간으로 하여야 하며,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한반도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북한은 어찌 보면 좋은 시점에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포스트-사회주의도 시가 어떻게 개발되어야 하는지 아무런 선례가 없었던 1990년대의 동유럽 도시들은 무분별한 자본의 도입으로 한 세대가 지난 지금은 오히려 특색과 경쟁력이 없는 도시들로 전락한 경우가 많다. 또한 대량생산기지의 유치를 통해 20세기식 산업화 도시개발 모델을 택하는 중국이나 베트남 역시 여러 산업도시가 겪었던 도시화 문제를 이미 겪기 시작하고 있지만, 그에 대한 새로운 대안이 없는 실정이다. 그에 반해 북한은 이전 사회주의 도시와 국가들의 시행착오에서 배우는 교훈이 있고, 새로운 산업혁명이 도래하는 이 시점에서 이제 막 새로운 도시개발 혹은 국토개발 모델을 도입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이러한 타이밍은 북한에 있어 호재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북한의 도시와 국토개발에 있어서 그것이 한국이 되었건 다른 산업국가의 것이 되었건 기존의 모델을 답습하기보다는, 새로운 개발 모델이 필요한 시점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사례보다는 미래를 대비하는 개발 모델은 궁극적으로 미래 한반도의 지역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이제는 북한을 또 하나의 한국으로 만드는 계획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북한을 통해 새로운 도시 모델과 새로운 국토개발 모델을 만드는 계획이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