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도시의 시간, 우리는 무엇을 없애고, 지키고, 또만드는가

도시의 시간, 우리는 무엇을 없애고, 지키고, 또만드는가

도시의 시간, 우리는 무엇을 없애고, 지키고, 또 만드는가.

임동우

기후위기. 새로운 말은 아니다. 필자가 초등학교 때 즐겨보던 과학동아에서 지구온난화라는 이야기를 처음 접했으니, 이미 이 주제는 꽤나 오랫동안 우리 주변에서 맴돌던 이야기다. 하지만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최근들어 이 문제는 우리가 체감하는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 같다. 매해 뉴스에서 나오는 이상 기후들은 이제 더 이상 새롭지도 않다. 올해만 이상 기후로 기록적인 폭염이 있나 싶으면, 다음 해에는 이상 기후로 기록적인 폭설이 온다. 우리는 이미 더 이상 여름 한 철에만 오던 태풍이 아니라 시도 때도 없이 올라오는 태풍을 예의주시 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이번 팬대믹 역시 우리는 바이러스에 의한 팬대믹이라고 이해하지만, 많은 생태학자들은 기후변화에 따른 박쥐의 생태환경이 달라지고, 이에 따른 인간과 박쥐의 접점이 생기게 됨으로써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전염되었다고 본다. 결국 이 지리멸렬한 코로나 바이러스 역시 기후 변화와 연동되어있는 것이다.

다행히 한국의 건축계에서도 최근들어 기후위기에 대한 논의들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 특히 한국의 건축계는 다른 서방권의 나라에 비해 기후위기에 대한 논의나 담론이 조금은 뒤쳐져있던 것도 사실이다. 이미 20년 전부터 미국의 많은 학교들에서는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 그리고 그로 인한 위험지역에서의 새로운 건축과 도시를 어떻게 새롭게 만들 것인가를 주제로 많은 스튜디오들이 진행되었다. 당시 한국 건축학과의 많은 졸업전시작품이 동대문운동장, 세운상가 등을 다루었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하지만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지금은 조금씩 여러 학교 학생들이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이를 프로젝트에 녹여내고 있다. 조금 더 친환경적인 공간을 만들고 패시브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또 탄소발자국을 최소화하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건축의 관점이 아니라 도시적 관점과 시간으로 보았을 때, 다가오는 환경의 위기에 어떻게 대응해야할까. 탄소발자국이 제로에 가까운 건물들로 가득차 있으면 그 도시는 더 친환경적인 도시일까. 도시의 시간은 건축의 것과 다르다. 상대적으로 본다면 도시의 시간은 역사의 시간에 더 가깝다. 짧게는 수십년, 길게는 수백년의 흐름을 담아내야 하는 것이 도시의 시간이고, 그렇다면 단순히 지금 당장 탄소발자국이 낮은 것 보다 수십년 수백년의 시간 속에서 평균적으로 탄소발자국을 낮추고 지구의 변화에 순응할 수 있는 도시 변화의 방향성이 무엇인지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 때문에 도시에서는 단순히 친환경인증에 맞는 건물을 생산해내는 것이 중요한 논의의 초점이 아니라, 도시의 생애주기를 이해하고 그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도시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이 질문은 특히 많은 한국의 중소도시, 특히 이들의 원도심에 중요하게 다가온다. 이들은 그 어느 때 보다도 많은 변화 (사실은 위기)를 맞닥 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안그래도 탈산업화시기와 인구감소의 시기를 맞아 많은 중소도시들이 고통을 겪기 시작했는데, 이 거시적인 흐름 속에서 여러 중소도시들은 원도심을 버리고 신도심을 만드는 전략을 택했기 때문이다. KTX역사를 도심에서 먼데에 건설함으로써 새로운 택지사업을 벌인다거나, 계속해서 외곽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는 등 전형적인 하석상대의 도시전략으로 생존해 나가고 있으며, 이러한 흐름속에서 원도시는 생존할 수 있는 생명력을 점차 상실해 가고 있다.

이러한 유행에 역행(?)하는 도시가 순천이다. 순천의 KTX 역은 일제시대때부터 있었던 순천역 그대로이고, 이는 원도심에 바로 인접해 있으며, 순천시청은 여전히 순천의 원도심에 존재한다. 순천에서도 새로운 순천시청의 대상지를 선정하기 위하여 여러 시민참여 워크샵들을 진행했는데, 결론적으로 현재 원도심의 시청자리를 확장하여 그대로 원도심에 신청사를 건립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렇다. 순천시장도 아니고, 연구용역을 맡은 어디 교수도 아니고, 순천 시민들이 스스로 정한 자리가 현재 우리가 설계를 마치고 공사를 기다리고 있는 순천시청 신청사 대상지다. 그리고 순천 원도심에 새로 건립되는 시청사라는 사실은 공모 단계에서부터 설계의 방향을 결정한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순천 원도심이라는 지리적, 사회적, 그리고 역사적 위치는 우리로 하여금 시청사의 공공성에 대해 새롭게 접근하도록 하였다.[1]그 동안 많은 한국의 시청사가, 특히 턴키시장이 주름잡던 2000년 이후 건립된 많은 도시의 신청사 혹은 공공청사는 넓은 땅에 상징적으로 세워진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정면성과 상징성이 매우 강조되며, 전면에는 “시민마당" 등의 이름을 가진, 그러나 보통 시민들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오픈스페이스가 형성되어있다. 또 많은 경우 새로운 넓은 필지가 필요했던 관계로 기존 도시조직에서 벗어난 곳에 건립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보니 민원업무가 없는 시민들에게는 그저 1년에 한 번 갈까 말까한 공간이 되어버렸고, 그만큼 공공청사의 공공성은 먼 이야기가 되어버리곤 했다. 그러나 원도심에 건립되는 순천시청은 완전히 다른 맥락이었고, 우리는 공공공간의 구성, 원도심의 경관, 그리고 주변으로의 연결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갖고 설계를 진행하였다.

먼저 새로운 순천시청은 원도심 한 복판에 건립되기 때문에 동서남북 어디에서나 시민들의 접근을 유도하여야하였고, 따라서 자연스레 정면성이라는 키워드는 존재할 수 없었다. 정면성이 없으니 전면의 대규모 시민마당 혹은 시민광장이 있을 수 있을리 만무하다. 대신 우리는 여섯개의 작은 (우리는 중정이라 칭한) 오픈스페이스들을 구성하여 시민들이 쉽게 누릴 수 있는 공공공간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기존청사가 있던 위치는 철거 후 공원으로 구성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 공간들은 각각의 위치와 규모가 다르기 때문에 시민들의 필요에 따라서, 인접한 프로그램에 따라서, 혹은 계절에 따라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사용될 수 있다. 조용한 휴식의 공간으로 사용될 수 있는 공간도 있으며, 바자회를 열기 좋은 공간도 있다. 아이들의 놀이 공간이 있는 한편, 또 버스킹과 같은 행위를 유도하는 열린 공간도 있다. 면적의 합은 대동소이하겠지만, 하나의 대규모 전면광장의 형식 대신 이렇게 다양한 스케일로 다양한 위치에 오픈스페이스를 구성하는 것은 원도심의 도시적 맥락에서 꼭 필요한 전략이었다.

둘째로 원도심의 경관에 대한 부분이다. 공공청사에서 정면성을 없앤다는 것은 권위를 탈피한다는 것이고 이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건축적 언어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다양한 중정과 함께 사무공간의 매스를 여러개의 박스로 분할 배치하였으며, 이 역시나 정면성을 배제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 박스들은 순천지평이라고 하는 매트형태의 매스 위에 얹혀진 방식이다. 순천지평의 레벨은 순천 원도심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3층 정도 높이의 건물에 맞추어져 있으며, 원도심의 스케일에 맞춰 다양한 박스의 높이도 최대 6층을 넘지 않도록 설계하였다. 이를 통해 원도심의 거리에서는 휴먼스케일에 맞는 순천지평을 전경으로 먼저 인지하게 되며, 상부의 박스들은 배경으로 인지하게 된다. 여러 스케일과 위치의 중정이 시민들의 다양한 행위를 유도한다면, 순천지평과 박스들은 원도심의 경관을 형성하는 것이다.

마지막 키워드는 이 순천지평에서 인근 동천으로 이어지는 공중보행로와 같은 연결성이다.[2]사실 공중보행로 역시 시민참여디자인단에서 여러 차례의 워크샵을 통해 제안한 사항이다. 공모전 당시에는 지침에 이 연결통로를 감안하여 디자인하도록 되어있었고, 우리는 이를 순천지평에서 연결될 수 있도록 제안하였다. 따라서 이 공공의 레벨은 순천시청 직원들의 휴게공간이 될 수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시민들을 위해 빛축제가 열릴 수 있는 공간이 될 수도 있고 인근의 동천 및 옥천에서 순천지평으로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순천지평은 일부에게만 개방이 되는 옥상정원의 방식을 탈피하여, 순천 원도심의 레벨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순천시청과 원도심이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사실 원도심에 건립되는 공공청사는 한 가지 매우 중요한 숙제가 있다. 단순히 새롭게 필요한 공공청사의 기능만을 담는 것이 아니라, 현재 위기에 빠진 원도심을 살리고, 원도심의 미래를 제시해야한다. 이는 전세계적으로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온 도시재생 전략의 이야기다. 순천시민들이 그러한 도시재생의 전략을 이해하고 이곳을 대상지로 선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잠재적 의식속에 새로운 순천시청의 건립을 통해 원도심의 활력을 되찾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수는 있겠다. 그리고 우리는 이번 순천시청 신청사 건립을 통해 순천시민들이 “주말에도 찾는 시청사”를 만들고자 하였고, 이것이 순천의 원도심을 살리는 첫걸음이라 생각했다. 주말에도 찾는 곳이라는 것은 많은 의미가 함축된다. 젊은이들이 데이트를 하고 싶은 곳이기도 하며, 또 아이를 데리고 주말 오후 시간을 보내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때로는 한적한 시간을 누리고 싶을 때 찾는 곳을 의미할 수도 있다. 아마도 현재 순천의 원도심은 이러한 성격의 공간은 (아직) 아닐 것이다. 그러나 순천시청의 건립을 통해 새로운 공공공간이 제공되고, 주말에 이곳에서 플리마켓이 열리고, 아이들이 씽씽이를 탈 수 있는 곳이 생기고, 그늘에 앉아서 소풍을 할 수 있는 곳이 생긴다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순천시민들은 점차 이곳을 찾을 것이다.

다시 환경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이 시대에 도시는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순천시청이 탄소제로의 건물은 아니다. 또 일부는 순천시청이 건립되기 위하여 원도심의 건물들이 철거되는 것을 보고 그냥 일반적인 개발사업 아니냐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필자는 건물의 시간이 아니라, 도시의 시간으로 본다면 순천시청이 여러 탄소제로 건물보다 훨씬 더 친환경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도시의 시간으로 본다면 유연한 건물과 공간일 수록 더 친환경적일 수 밖에 없다. 시간에 따라 그 건물을 채우는 주체가 달라지고 기능이 바뀔 수 밖에 없는 것이 도시의 시간이다. 때문에 역설적으로 더 중요한 것은 건축의 자율적 형태 (autonomous form)다. 알도 로시가 주장하듯 기존 도시의 역사를 기억하는 유형학적인 건축은 무작정 새로운 건축의 형태보다 더 긴 호흡으로 존재한다. 기능은 바뀌지만 그 자율적 형태는 그대로 도시의 공간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 미래에 순천시청으로서의 기능은 사라질 수 있지만, 사람들이 채우던 크고작은 중정의 오픈스페이스, 주변에서 연결되어 새로운 공공공간으로 자리잡은 순천지평의 공간은 그대로 남을 것이다. 그것이 건축에서의 자율성을 말한다. 기능을 위한 형태가 아닌, 도시 공간을 만들어 내기 위한 형태가 자율적 형태이고, 이에 따라 도시의 시간에서 얼마나 더 친환경적인 건축인지를 판가름 할 수 있을 것이다.

순천시의 캐치프레이즈는 “생태도시, 순천”이다. 실제로 순천은 순천만뿐만아니라 국가정원, 아름다운 도심의 하천 등 생태도시로서의 면모가 가득한 도시다. 마치 생태라는 단어는 도시라는 단어와 대조되는 듯이 여겨지지만, 이제는 건축과 도시가 생태의 일부로 여겨지는, 혹은 여겨져야만 하는 시대다. 생태도시 순천의 원도심의 모습은 어떠해야할까.“자연”이 아니라 “생태”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사람과의 공존을 함축하기 위함이다. 결국 순천의 원도심에는 사람들이 채워나가는 건축과 도시공간들이 풍부해야할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원도심에 어떤 기능을 만들어 넣겠다가 아니라, 어떤 공간을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어떻게 채워나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그리고 사람이 채우는 공간은 그 기능이 다했다고 해서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순천 원도심에 새로운 공간적 질서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로 채워질 원도심을 꿈꾸며.

[1]여기서 “우리"는 필자를 포함해 공모를 함께 진행했던 남정민, 양성구를 의미한다.

[2]순천을 가로지르는 동천과 이것의 지류인 옥천은 국내 최고의 도심 하천 중 하나다. 이들의 스케일과 수면까지의 인접성, 그리고 이곳의 풍경은 국내 최고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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