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우리가 그려온 미래: 한국 현대건축 100년>

<우리가 그려온 미래: 한국 현대건축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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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려온 미래: 한국 현대건축 100년>

2000년대 이후

임동우

임진영의 글은 2000년대 한국의 건축을 매우 함축적으로 요약. 주요한 개별 건축가들의 작업들의 성격과 의미를 짚어내면서도, 이들의 나열을 통해 2000년대 한국 건축판의 컨택스트, 맥락을 서술하고 있다. 다른 시기의 발표 및 글과는 달리 임진영이 다루고 있는 2000년대는 개별 건축가들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밖에 없는 듯이 보인다. 고층화에 대한 욕구를 다룬 50년대, 경제개발시기의 시대적 현상을 반영할 수 밖에 없었던 60-70년대, 김수근-김중업 시대가 막을 내리고 한국의 경제가 정점에 있었으면서 한국을 국제 무대에 내세우고자 했던 80-90년대는 모두 시대가 설명해주는 당대의 한국 건축의 맥락이라고 하는 것이 존재했다. 물론 2000년대 역시 여행 자유화 시대를 누린 세대가 등장하고, 또 2008년 세계경제위기 등 여러 사회.경제적 맥락이 존재했지만, 여전히 개인 건축가의 작업에 집중해서 설명해야 더 이해도가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이것이 과연 “아직 역사가 되지 않은” 시기의 이야기이기 때문일까. 202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서 2000-2020년 기간의 이야기는 아직 큰 사회적 맥락을 이야기하기에 너무 “현재”의 이야기 때문일까. 물론 이러한 요소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임진영의 글과 발표를 보다보면, 이것은 결국 한국 건축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현상적인 부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지금으로부터 20-30년이 흐른 시점에서 2000년대를 되돌아 본다 해도, 임진영이 하나의 맥락보다는 각개로 전개할 수 밖에 없었던 이 시각이 크게 흔들리지는 않을 것 같다. 이는 앞선 시대를 발표한 최원준의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2000년대를 이끌고(?) 있는 건축가들은 소싯적 무슨 단체에 속해 고적답사 다니는 문화보다는 여행 자유화라는 정책을 등에 업고 개인적으로 해외 여행을 다녔던 세대인 것이다. 매우 단편적인 힌트일 수는 있으나, 그만큼 이 세대는 전체의 목소리 보다는 각자의 개성을 표출하는 것이 더 익숙한 세대라는 이야기로 귀결될 수 있는 힌트다.

임진영은 직접적으로 소결내리지는 않았지만, 임진영이 개별 건축가에 집중하는 식으로 2000년대의 건축을 기술할 수 밖에 없는 현상 그 자체가 한국적 모더니즘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지난 수십년동안 한국 건축계에서의 가장 큰 과제는 서양의 근대건축 (혹은 건축술_과 한국의 전통성을 어떻게 결합하느냐였다. “한국성”이라는 정체모를 (혹은 해석불가한) 단어는 한국 건축계에서 전혀 어색하지 않은 단어가 되어버렸다. 이것이 김수근의 부여박물관 논란에서부터 야기된 논쟁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여전히 전통적, 한국적이라는 이야기는 한국건축계에서 중요한 화두다. 그런데 이것이 2000년대부터는 하나의 집단적 패러다임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건축가들의 개별적 실험 과정으로 나타난다. 어떤 건축가에겐 전통적 공간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어떤 건축가에겐 전통 건축의 구축 기법 목은 요소 자체를 재해석하는 과정이, 또 어떤 건축가는 전통건축이 아닌 한국의 도시적 맥락을 반영하는 것이 현재 한국 건축계의 현상이며, 중요한 것은 이것이 어떠한 집단현상으로 나타난다기 보다는 건축가 개개인의 고민과 실험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건축가의 개성이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그것이 그대로 존중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은 확실히 2000년대의 특징이다. 그리고 아이러니컬하게도 파주출판단지나 헤이리 예술인마을 등의 기회(?)는 건축가들이 “나의 정체성”을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한 것은 아닐까 한다. 2000년대에 활발히 활동하는 많은 건축가들은 젊은 시절 매우 “운 좋은” 기회를 얻었다. 위의 두 프로젝트를 통해 당시 젊은 건축가들은 다양한 미간건축을 진행할 기회가 있었고, 수많은 작품들이 나열되는 가운데 자신의 프로젝트가 다른 건축가의 프로젝트와는 다른 정체성을 보여지도록 하겠다고 하는 것은 어찌보면 건축가들의 본능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이 세대의 건축가들에게는 집단적 언어보다 개별적 언어가 더욱 더 중요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여행 자유화, 해외유학, 민간건축 위주의 시장 등은 2000년대를 이끌어 가는 건축가들을 설명하는데 빼 놓을 수 없는 키워드가 되었다. 하지만 이들 시대적 키워드의 결론적인 얘기는 이러한 맥락 때문에 어떠한 시대적 담론이 형성되었다가 아니라, 오히려 개별건축가들의 이야기들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이제서야 “모더니즘의 종말”을 이야기할 수 있는 지점까지 왔다고 확대 해석할 수 있겠다. 시대적인 정의로서 “근대”가 아닌 언어로서 “모더니즘”을 이야기한다면, 모더니즘은 하나의 매우 명확한 건축 언어이고, 개별성보다는 합리성과 기능성, 그리고 보편성이 강조된다. 마르크시즘과 산업혁명의 시기에 생겨난 건축언어로서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리고 건축 언어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조금 다르지만, 사회적 의미로서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에서 억눌렀어야 했던 개별성을 표출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큰 틀에서 보자면 현재 2000년대의 한국 건축은 포스트모던에 가깝다. 임진영이 언급하는 “한국적 모더니즘”은 아이러니하게도 모더니즘을 탈피하고 있는 한국 건축계의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이러한 과정은 2010년대에 등장하는 젊은 건축가들에게서도 이어진다. 이는 1970년대 부동산 시장의 경제성과 손을 마주 잡았던 몇몇 포스트모더니스트 건축가들에게서 보일 법한 입면으로 소위말하는 “생존건축”을 하는 건축가들의 등장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건축가들의 개별성은 더욱 더 진화하고 있으며, 특히 이제는 “한국” 혹은 “전통”이란 단어는 더 이상 2010년대의 건축가들의 입에서 듣기 힘든 단어들이 되었다. 직.간접적으로 위의 의미들이 건축에 녹아져 있었던 2000년대의 건축가들과는 또 다른 단계로 탈피해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임진여의 지적대로 2000년대의 건축가지만 2010년대의 마인드로 진보적 성향을 띈 건축가들도 없지 않았다) 이들 건축가들에게 있어서는 (모두가 그런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이제는 “모더니즘” 그 자체에 도전을 하고 있다. 모더니즘의 구축방식을 재해석함은 물론 완전히 재구성하려는 건축가들도 있고, 모더니즘이 추구하던 기능성을 의도적으로 뒤집어 놓는 건축가들도 보인다. 그야말로 근대건축을 지나 현대건축이다.

이번 기획전시에서 “현대건축”이라는 단어는 매우 의미있는 단어로서 매우 조심스럽게 정의되었다. 우리의 현대건축의 시기를 지난 100년으로 정의내릴 수 있느냐 없느냐는 또 하나의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 낼 것이다. 하지만 이기획전시와 심포지움을 통해 읽을 수 있었던 점은 시대적 의미로서가 아닌 건축언어로서 근대건축 혹은 모더니즘 (Modernism)과 대비해서 현대건축 (Contemporary Architecture)를 말한다면, 지금 한국의 건축은 충분히 근대를 넘어선 현대건축을 추구하고 있다. 2010년대의 건축가들은 더 이상 모더니즘을 어떻게 수용할지, 모더니즘에 “한국성”을 어떻게 대입할지 고민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모더니즘에 맞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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